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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20년까지 150조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두고 은행과 증권이 초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숨 가뿐 경쟁을 시작했다. 은행권과 금융투자 업계의 정면승부는 1990년대 말 시중은행에서의 펀드 판매가 허용된 후 두 번째다. 당시 영업지점이 많은 은행이 증권사에 완승했지만 이번 ISA 대전은 자산운용과 판매 등 종합적인 역량이 우수한 쪽이 승기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단기 레이스에서는 영업망이 잘 갖춰진 은행이 유리하겠지만 중기적으로 본다면 자산운용 경험이 많은 증권이 나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가 ISA에 한해서만 은행에 투자일임업 자격을 부여하기로 하면서 금융사의 자산운용 능력이 승부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일임형 ISA는 고객이 직접 투자 내용을 결정하고 자산배분 비중을 결정하는 신탁형과 달리 금융사가 투자판단권한을 고객으로부터 위탁받아 자금을 재량껏 운용할 수 있다. 금융사의 판단과 서비스에 따라 고객의 수익률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시장에서 엄정한 평가 잣대로 활용될 수 있다.
금융당국도 수익률을 ISA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강조하면서 개별 금융사의 자산운용 능력 강화를 주문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ISA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이라면서 금융사의 분기별 수익률을 비교해놓은 공시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당국이 과도한 경품 제공 등 과열 마케팅에 제동을 건 것도 국민자산 증식이라는 취지를 호도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ISA의 계좌이동 제도가 오는 5월부터 시행된다는 점은 150조원 머니게임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비과세 혜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수료를 내지 않고 금융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ISA '갈아타기' 현상이 활발히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에 제한적이나마 투자일임업 자격을 부여한 이유도 경쟁을 통한 소비자 편익 증대와 금융 산업 육성에 있다.
시장에서는 자산운용 경험이 풍부한 증권사가 수익률 측면에서 은행보다 높은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평가한다. 증권사는 이미 일임형 ISA와 비슷한 성격의 상품인 랩(wrap) 어카운트를 판매하고 있다. 랩 어카운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여러 금융상품을 랩으로 싸듯 모아서 관리하는 종합자산관리계좌를 의미한다. 이은미 한국투자증권 대치PB센터 팀장은 "일임형 ISA의 모델 포트폴리오는 랩 어카운트의 발전된 형태로 보고 있다"며 "많은 증권사가 이미 투자자의 성향에 따른 자산편입 비중과 운용전략에 대한 체계를 갖춰놓은 만큼 은행보다 준비가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은 증권사보다 뒤늦게 일임형 ISA 판매를 위한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우리은행 등은 일임형 ISA의 자산배분전략을 수립할 경력직 채용에 나섰으며 신한은행·KB국민은행은 자산관리(WM) 사업에 경험이 많은 임원을 총괄 책임자로 임명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판매 역량 측면에서는 일단 은행이 폭넓은 영업망을 바탕으로 ISA 시장 초기 장악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은행의 판매 창구는 7,305곳으로 1,217곳에 불과한 증권사와 비교해 6배나 많다. 아울러 판매인력(펀드 기준) 규모에서도 은행(9만2,920명)은 증권사(2만3,005명)와 큰 차이가 있다. 김진영 신한은행 신탁연금본부장은 "과거 펀드 판매의 사례와는 달리 이번에는 영업점의 지상전과 온라인의 공중전이 동시에 치러지는 예측할 수 없는 승부가 예상된다"고 짚었다.
실제 금융투자 업계는 금융위원회의 ISA 활성화 방안에 따라 일임형 상품의 온라인·모바일 계좌 개설 통로가 열리게 된 점에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달 22일부터 증권사가 모바일 계좌 개설 서비스를 시작한 후 5일 만에 1만건에 육박하는 계좌가 신규 개설됐다.
다만 은행과 증권사 모두 ISA 관련 준비 태세에 스스로 부정적 평가를 내놓았다는 점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은행·증권사 ISA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34명이 '준비는 하고 있지만 우려스러운 점도 많다(68%)'고 응답했다. 준비상황에 대해 '미흡한 점이 많다'고 답한 참여자도 22%(11명)에 달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ISA와 관련해 더 이상의 제도 변경이나 일정 조정은 없을 예정"이라며 "차질 없이 사업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금융사를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송종호·지민구기자 mingu@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