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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동행'이 이뤄진다고 했던가.
우리 기업 문화. 특히 조선 업종에서 사측에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인 노조원들이 어려운 회사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수주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주요 간부들이 '영업맨'으로 변신해 해외 선주사들과 스킨십에 나선 것이다.
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의 노동조합 격인 노동자협의회는 2일부터 글로벌 오일메이저 셰브런 등 거제조선소에 파견 나온 선주사 사무실을 차례로 방문한다.
위원장과 전임자·교섭위원·대의원 등 노동자협의회 주요 간부들은 한 팀을 꾸려 5~6개 대형 선주사를 찾아 삼성중공업과 앞으로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추가로 선박이나 해양프로젝트가 필요할 때 최대한 삼성중공업에 주문할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선박이나 해양플랜트를 건조하는 데는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4년이 걸린다.
이에 따라 선주사들은 수명에서 수백명에 이르는 엔지니어 등 인력을 조선사로 보내 건조과정을 감독하고 원하는 사양에 맞게 배가 지어지도록 설계 등 각종 작업에 참여한다.
노동자협의회 간부들이 영업맨을 자처하면서까지 선주사를 찾아 나선 것은 지난해 사상 최악의 적자에 이어 올해 극심한 수주 부진을 겪으며 조선업과 회사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해양플랜트 부실로 1조5,000억원대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올 들어서는 1~2월 단 한 건의 수주도 올리지 못했다. 앞서 수주한 프로젝트에서는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고 미래 먹거리가 될 수주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난국을 보다 못한 노동자협의회는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후방에서라도 영업을 지원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노동자협의회의 한 간부는 "(근로자 대표들이) 선주사를 찾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당장 영업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장 직원들 특유의 인간미로 선주사 직원들과 유대감을 쌓으며 돈독한 신뢰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이후 2년 연속 해양플랜트에서 대규모 부실을 기록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올해는 이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지난해 자산 매각과 인력 효율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해양플랜트 부문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해외 선주사와 엔지니어링업체,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와 함께 해법을 모색했다. 또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세계 1등으로 끌어올린 제조전문가 김종호 사장을 이달부터 생산부문장에 전격 투입했다.
특히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주인의식'을 강조하며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위기 앞에서 하나 되는 노사관계를 만들어가자"고 밝혔는데 노동자협의회까지 회사 위기 극복을 위해 영업에 동참하며 화답하면서 경영정상화 작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선업 위기를 뚫기 위해서는 노사가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며 "노조까지 영업을 돕겠다고 나선 삼성중공업의 사례가 다른 조선사로 확산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