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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소형 반도체는 반도체 자체의 성능 향상뿐 아니라 반도체가 들어간 제품의 경량화, 가격 절감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반적인 원자 한 층의 두께인 0.25㎚(10억분의1m)의 극단적으로 크기가 작은 반도체까지 제작되는 추세다. 이처럼 반도체가 '초소형화'하면서 주목받는 것이 2차원 물질 중 하나인 그래핀(graphene)이다. 벌집 형태의 탄소 원자인 그래핀은 두께가 0.2㎚인데다 반도체 제작에 주로 쓰인 실리콘보다 상온에서 전류를 100배 빨리 전달할 정도로 전기전도성이 높아 학계에서는 '꿈의 소재'라고 불리지만 반도체 소재로는 부적합한 치명적 단점 두 가지가 있다. 전류의 흐름과 끊김을 제어하기 어렵고 소재 자체가 단단해 잘 휘거나 구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그래핀을 대신할 또 다른 2차원 물질을 찾는 노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서울경제신문이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3월 수상자인 김근수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는 그래핀을 대체할 '포스트 그래핀'인 포스포린에 대한 연구성과를 인정받았다. 포스포린은 인(P) 원자가 2차원으로 구성된 2차원 물질로 0.5㎚ 두께에 그래핀과 달리 규칙적인 주름이 잡혀 있어 외부 압력이나 전기장에 의해 변형이 쉬운 것이 장점이다.
김 교수는 포스포린의 '띠 간격(band-gap·밴드 갭)'을 폭넓게 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띠 간격은 반도체와 절연체(전기저항이 큰 물질)의 전자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 역할을 하며 띠 간격이 0에 가까울수록 도체, 클수록 절연체의 성질을 띤다. 그래핀 소재로 전류의 흐름과 끊김을 제어하기 어려운 것은 그래핀에는 띠 간격이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띠 간격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면 물질의 성질을 도체와 절연체 사이에서 변형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띠 간격은 물질의 고유한 물리량이어서 거의 변하지 않지만 일정 정도의 조작을 가하면 띠 간격 조작이 가능하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에 돌입한 것이다.
김 교수는 포스포린 표면에 칼륨 원자를 흡착시킨 뒤 여기에 수직 방향으로 강력한 전기장을 걸었다. 그러자 포스포린의 전자 배치가 달라졌고 0~0.6 사이의 띠 간격이 발생했다. 포스포린의 전자물성을 반도체에서 도체까지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김 교수는 띠 간격 값이 0이 될 때 포스포린의 전기전도성이 그래핀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진다는 사실 역시 발견했다. 김 교수는 "그래핀의 띠 간격을 만들고 견고한 성질을 조작하려는 노력 대신 포스포린처럼 이미 띠 간격을 갖고 있는 물질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접근을 달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포스포린이 당장 그래핀을 대체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포스포린은 공기와 닿으면 쉽게 산화하는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오히려 그래핀과 포스포린이 반도체 소재 '적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추세다. 다만 김 교수는 포스포린이 그래핀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포스포린은 그래핀 상용화의 고질적 문제점을 해결하고 그래핀의 장점만 취한 것"이라며 "포스포린 트랜지스터를 실제 제작하고 포스포린의 산화를 방지하는 기술을 추가 연구를 통해 개발하면 그래핀보다 먼저 상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용화를 위한 추가 연구가 성공한다면 작은 크기와 높은 전기전도성, 띠 간격 조작이 가능한 포스포린은 앞으로 트랜지스터나 다이오드, 태양전지 같은 초소형 전자소자(素子) 또는 광전소자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자 몇 개 수준의 두께를 갖는 얇은 2차원 반도체 물질을 활용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단순히 하나의 제품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 사업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