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방 구해야지” 쫓기던 연인이 뜬금없이 달달한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부동산 중개 앱을 실행한다. 둘은 ‘함께 살 방’을 구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람 사는 데 의식주가 필수긴 하지만 여간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쯤이면 대다수의 독자가 눈치챘을 것이다. 작년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용팔이’ 얘기다. 시청자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주원과 김태희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든 성당 한 켠에서 부동산 중개 앱을 실행시키고 매물을 확인하는 장면은 확실히 코미디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 직후부터 며칠간 ‘극의 흐름을 해쳤다’는 네티즌들의 부정적 의견이 쏟아졌다. 그러나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은 각종 패러디와 관련 기사로도 이어졌다. 우스갯소리로 승리자는 ‘대담한 PPL마케팅을 진행한 해당 회사’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광고의 효과가 브랜드의 인지도 상승인 점을 감안하면, 뭐 완전히 틀린 소리는 아니다.
본래 영화나 드라마 속에 제품을 소품으로 등장시키는 홍보 방식인 PPL마케팅은 대표적 간접광고로 꼽힌다. “저 가방 예쁘다”, “주인공이 보고 있는 책은 뭐지?”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상품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다. “이 물건 좀 사세요”라고 대놓고 홍보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의 저항감을 최소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PPL은 간접광고라기 보다는 직접광고에 가깝다. 광고 행태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방송통신위원회는 작년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간접광고 허용시간을 해당 방송프로그램 시간의 5/100에서 7/100로 확대했다. (지상파는 5/100 유지) ‘용팔이’ 사례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광고시간에 대한 규제 완화는 다양한 형태의 간접광고를 가능하게 하는 길을 연 셈이다. 드라마 안에 또 하나의 작은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김치냉장고의 새로운 기능을 자세하게 설명한다거나 주인공이 운영하는 가게라는 이유로 신메뉴를 소개하는 광경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직접 노출식 PPL은 제 아무리 잘 다듬는다고 해도 극의 개연성을 해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만은 아닌듯하다.
시청자는 똑똑하다. 잠재 소비자인 이들에게 광고를 광고가 아닌 것처럼 교묘하게 노출하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 없다면 차라리 대놓고 하는 건 어떨까. 일종의 솔직함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물론 똑똑한 소비자는 광고에 현혹돼 물건을 쉽게 구매하지 않는다. 제품의 가격, 성능 등 절대가치를 비교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문제는 소비자가 수천 수 만개 제품의 절대가치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결국 특정 제품을 구매하려고 할 경우 탐색범위를 좁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극 중 주인공이 처했던 상황이나 필요로 했던 특정 기능을 사용하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면 실제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광고주들은 확신하는 것이다. 15초 광고 앞 뒤에 브랜드를 노출하는 데 주력하는 것보다 일상생활을 떠올릴 수 있는 드라마 속에 제품의 기능을 녹여내는 것이 효과적일 거라고 말이다.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고 PPL을 진행하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화제성, 이슈화 가능성이 담보된다면 이를 마다할 회사 역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시청자는 질 높은 콘텐츠를 볼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애교로 넘길 수 없는, 도를 넘은 광고로 해당 콘텐츠의 질을 낮추는 행위는 시청자도 방송사도 광고를 집행한 회사에게도 손해다. 간접광고의 효과와 영역이 확대될수록 ‘재미’와 ‘자본의 논리’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바라건대 그 줄에서 추락하는 ‘드라마의 홈쇼핑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방통위의 새 방송법 개정안에 담긴 ‘외주제작사의 간접광고 판매 허용’이 극의 흐름에 부합하는 간접광고를 만들어 낼 기회가 될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고.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