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대부분이 그렇듯 윤세리(63·사진)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도 어렸을 때는 모범생이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라 선행상도 여러 번 받았다. 공부 외에 꼽은 특기가 구연 동화였다고 하니 이보다 더 모범적(?)일 수 없다.
윤 대표는 아들뻘 기자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 “얼마 전 우연히 어렸을 적 사진을 봤는데 내가 봐도 정말 모범생 같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법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이유마저 ‘정석’대로였다.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법대에 가는 줄 알았고 법조인의 꿈을 포기한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주고 싶어서였단다.
하지만 틀을 깨려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기상은 법조인이라는 꿈과 무관하게 마음 속 깊은 곳에 내재돼 있었다. 존경하는 인물이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과 같은 시대의 정복자였으니 말이다.
개척 정신은 대학 시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법대생들이 판·검사가 되기 위해 형법, 민법 공부에 치중할 때 윤 대표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공정거래법 연구에 매진했다. 시장에서의 독점, 담합 등을 규제하는 공정거래 분야는 지금이야 로펌의 주요 업무 분야로 각광받고 있지만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엔 법 자체가 없었다.
윤 대표는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시장이 복잡해지면 반드시 시장 질서 공정화에 대한 수요가 생길 것이라고 확신했다”며 “무엇보다 남들이 안 하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다는 짜릿함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아니나다를까 그의 예상대로 1980년 12월 31일 공정거래법이 만들어졌다. 법 제정 수개월 전에 썼던 석사학위 논문이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생길 법적 이슈를 다룬 것이었으니 윤 대표가 시대를 얼마나 앞섰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 해 검사로 임용됐지만 1년 만에 안정적인 길을 포기하고 미국 로펌행(行)이란 도전을 택한 것도 윤 대표의 모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3년간 미국 로펌 ‘베이커 앤 맥킨지’에서 근무하며 해외 선진 법제와 변호사 실무 경험을 익혔다.
윤 대표는 1989년에 귀국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온 공정 거래 분야는 그때까지 큰 법적 이슈가 없었던 터라 마땅한 일감이 없었다. 때문에 인수합병(M&A), 조세 등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며 때를 기다렸다.
기회는 1997년에 찾아왔다.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윤 대표의 기다림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부실에 빠진 대기업들의 부당한 계열사 지원 등이 드러나면서 삼성, 현대 등 굴지의 기업들이 윤 대표를 앞다퉈 찾았다.
그는 이들 대기업을 대리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줬고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불공정 거래 사건에서도 맹활약했다. MS, 인텔 등이 ‘시장의 지배자’ 위치를 이용해 끼워팔기, 로열티 리베이트 등 수법을 쓴 데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등 제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공정위와 협업해 공정거래법을 발전시키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외국인이 해외에서 저지른 위법 행위도 한국 시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국내법을 적용해 규제하는 ‘역외 적용’ 법리와 소비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해 표시, 광고를 의무화한 ‘표시·광고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은 모두 윤 대표의 연구와 자문에 따라 도입된 것이다.
윤 대표의 개척 정신은 예순을 넘어 더 만개하고 있다. 2012년 59세의 나이로 율촌의 최고경영자(경영 대표변호사)에 오른 이후 기존 로펌에서 보기 힘든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발굴하기 위한 연구개발(R&D) 역량 강화 프로젝트.
R&D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로펌 내 ‘연구소’를 세우고 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을 소장으로 앉혔다. 조세, 금융 등 그룹별로도 연구센터를 따로 둬 연구소와 시너지를 내도록 했다. 연구소와 연구센터는 일 주문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기업·공공기관 등이 어떤 법적 자문·송무 수요가 있을지를 선제적으로 연구해 새로운 법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R&D에 역점을 둔 배경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반 기업은 최고경영자가 전략부터 인사, 조직 관리, 마케팅 등을 총괄하며 회사 운명을 좌우하지만 로펌은 일반 기업과 다르다는 통념과 고객이 의뢰하는 일을 수임하는 ‘주문 생산’에 업무가 맞춰져 있다는 이유 때문에 경영과 R&D 비중이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로펌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져서 이런 낡은 생각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혜안과 노력은 벌써 성과가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은행 리먼브라더스와 국내 대형 증권사 A사 간 파생상품 관련 분쟁을 해결한 케이스가 율촌 금융그룹 연구센터의 작품이다. 해당 상품의 복잡한 구조 때문에 증권사조차도 포기하다시피 했던 사건에서 율촌은 연구센터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 회사에 제시했고 결과적으로 A사의 비용 부담을 100억원 이상 낮추는 데 성공했다.
조세그룹 연구센터에서는 국내 사업장 없이 한국 소비자에 전자통신(IT)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사업자가 국세청에 부가가치세를 납부하도록 한 법령 개정과 관련해 B2B(기업 간 거래)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윤 대표는 지난해 세계적인 법률전문 매체 ‘아시안 리걸 비즈니스’(ALB)로부터 올해 최고의 경영 대표 변호사로 선정됐다. 율촌이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가 선정한 ‘2015년 가장 혁신적인 한국의 로펌상’, 미국 법률전문지 아메리칸 로이어(American Lawyer)가 선정하는 ‘2016년 올해의 아시아 로펌’ 등으로 뽑힌 배경에도 윤 대표의 거침 없는 혁신 경영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co.kr 사진=송은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