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최종국은 인간을 위해 억지를 부린다면 사실상 결승 대국이다. 이 9단이 자청해 흑을 쥔 대국에서 이긴다면 백번 승에 이어 흑번 승까지 챙겨 완벽한 승리를 안을 수 있었다. 꿈은 무위로 돌아갔다. 최종국은 비록 이 9단이 돌을 던져 불계패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정한 승부사의 모습을 보여준 명국이었다.
초반 포석은 이 9단이 4국 이후 검토할 때 예상한 대로 진행됐다. 흑은 우상귀를 굳히고 소목에 한 칸으로 걸쳐가는 정석으로 좌하귀까지 차지해 실리를 확실하게 챙겼다. 백이 12로 우상귀에 붙여간 수는 최신 유행으로 알파고가 과거 기보는 물론 최근의 기보까지 모두 섭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국에서 두점머리와 세점머리를 계속 맞으면서도 끊지 않던 이 9단이 5국에서 젖힌 흑을 받아주지 않고 21·23으로 끊은 것은 기세의 착점이다. 이를 통해 백 석점을 잡고 우하귀를 크게 키워서는 흑이 편한 바둑이었다.
초반의 백미는 우하귀에서 벌어진 전투다. 백50으로 젖힌 데 대해 흑이 51로 2선으로 내리며 백이 넘어가지 못하게 막은 것은 이 9단이 누구의 수읽기가 맞는지 확인하자고 둔 수다. 알파고가 부분 전투에서 착오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은 선입견이었다. 알파고는 약간의 이득을 보겠다며 전투에 나섰지만 이 9단의 정확한 수읽기에 막혀 손해만 봤다.
90수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바둑은 이 9단의 실리와 알파고의 세력으로 팽팽하게 어울렸다. 이 9단이 중앙 백진을 삭감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을 때 좌하귀 날일자로 굳힌 알파고의 착점은 마치 전성기 때의 이창호 9단을 보는 듯했다. 관전자들은 중앙 백진을 지키는 대신 좌하귀를 집으로 만든 착점을 보며 알파고가 그것으로 백승이라는 계산서를 내놓은 게 아닐까 하며 가슴을 졸여야 했다.
알파고는 이날 처음으로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 9단은 1분 초읽기가 끝나는 순간 착점해 관전자들이 그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알파고는 정확히 35초가 되면 착점해 말 그대로 기계적이었다. 알파고는 이날도 4국에 이어 이상한 수를 뒀다. 128·130·132·134까지 4번의 착점은 팻감만 없앤 수다. 158·160도 의미 없는 수다. 알파고가 악수성 착점을 할 때마다 흑이 우세를 점하는 것 같았지만 집을 세어보면 놀랍게도 여전히 미세했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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