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주총 키워드는 책임경영·주주권익 강화·신사업 진출

■ 대기업 333곳 주주총회
구본준 부회장, LG화학 이사진 합류… 신사업 진두지휘
"나보다 회사가 더 중요" 현정은·이재현 회장은 물러나
기아차, 투명경영위 설치… 주주와 소통·가치 제고나서


올해 두 번째 '슈퍼 주총 데이'인 18일 SK와 LG 주요 계열사를 비롯해 기아자동차·현대상선 등 대기업 300여곳이 일제히 주주총회를 열었다. 이날 주총에서도 최태원 SK㈜ 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일가들이 대거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며 대주주 책임경영을 강화했고 기아차가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주주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들도 속속 도입됐다. 바이오 사업을 정관에 반영한 LG화학 등은 주주들에게 신사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이날 주총에 앞서 국민연금이 최태원 회장의 이사 선임에 반대했고 현대상선은 7대1 감자를 안건으로 올리며 주주 간 표 대결이나 갈등의 우려도 제기됐지만 별다른 충돌 없이 안건들이 대부분 통과됐다.

◇책임경영 나서는 대주주 일가=SK그룹에서는 최태원 회장과 그의 사촌 형인 최신원 SKC 회장이 각각 SK㈜와 SK네트웍스 등기임원에 선임되는 동시에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날 주총을 앞두고 국민연금과 일부 외국인 주주들은 최태원 회장의 선임을 반대했다. 그러나 대다수 주주들은 SK그룹의 지속적인 성장과 미래를 위한 최태원 회장의 복귀에 힘을 실었다. 바이오·제약과 정보기술(IT) 서비스,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등 SK의 신사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그룹 총수의 책임경영이 절실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특히 SK그룹은 대주주 책임은 강화하면서도 SK㈜와 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하이닉스 등 주력 계열사들의 임원 퇴직금 지급체계를 손봐 고위경영진의 퇴직금을 최대 3분의1가량을 축소하며 권한을 낮췄다. 또 앞서 투명경영과 주주친화경영 차원에서 이사회 산하에 '거버넌스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는 등 투명경영 장치를 보완했다. 이런 조치가 최태원 회장의 책임경영에 진정성을 더했고 주주들의 지지를 이끈 것이다.

이날 SK네트웍스의 신임 등기이사에 오른 최신원 회장도 책임경영을 통해 회사 성장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SK네트웍스의 전신은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로 최신원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최종건 SK 창업주가 만든 회사다. 또 최신원 회장이 지난 1999년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던 SK유통과 선경이 통합돼 SK네트웍스가 된 만큼 최신원 회장은 SK네트웍스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SK네트웍스는 대주주 일가인 최신원 회장이 합류하면서 렌터카 등 신사업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본준 ㈜LG 부회장은 LG화학의 기타비상무이사에 선임됐다. 구 부회장은 에너지와 스마트카·첨단소재 등 LG그룹의 신성장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LG화학이 바이오 등 신사업에 힘을 쏟는 가운데 구 부회장이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면서 그룹 내 신사업에 대한 투자와 시너지에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한편 회사를 위해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 총수일가도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상선의 빠른 경영정상화와 채권단 지원을 위해 이사에서 물러났고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재판 일정과 건강을 이유로 이날 CJ와 CJ제일제당 이사에서 사퇴했다. 이 회장은 1994년 CJ제일제당 등기이사로 최초 등재된 후 22년 만에 물러났다.


◇너도나도 주주권익 강화=기아자동차는 이날 주총에서 이사회 안에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하고 주주와의 소통 강화와 주주 가치 제고에 나서기로 했다. 계열사인 현대차는 앞서 지난해 4월 같은 형태의 투명경영위원회를 설립했다. 투명경영위원회는 인수합병(M&A)과 주요 자산취득 등 주주가 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경영사항이나 배당 등 회사의 주주 환원 정책 등에 대해 이사회에 주주의 권익을 반영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 주주와의 소통 활성화와 주주 권익 향상을 위한 개선 방안 발굴을 위해 회사의 핵심 현안을 상시적으로 공유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회사의 중장기 경쟁력 제고 방안 등을 제안한다.

배당을 강화하거나 경영진의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주주의 이익을 확대한 사례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경영성과 배당으로 주당 3,200원에 더해 일회성 특별배당금 1,600원을 추가하기로 했다.

◇신사업 비전 제시·조직개편 잇따라=LG화학은 바이오 사업을 진출을 위해 정관변경을 의결했다. LG화학은 회사 정관에 종묘생산과 종균배양 사업, 국내외 종자 육종·가공·채종·판매 사업, 유전공학제재 제조 및 유통 사업, 의약품, 의료용 화합물 및 생약제재 제조 사업 등을 추가했다. LG화학은 동부팜한농 인수를 앞두고 최종 실사를 진행 중이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향후 고성장이 예상되는 바이오 산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했고 M&A를 포함한 다각적인 방법으로 집중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위기상황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은 이날 영업보고를 통해 "올해는 미래성장과 본원적 제조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완공한 M14의 양산을 차질없이 전개하겠다"며 "HBM·NVDIMM 등 차세대 메모리 제품을 조기 개발해 미래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LG전자는 정관을 변경해 기존 7명이던 사내이사를 9명으로 늘리고 조준호 MC사업본부장(사장)과 조성진 H&A사업본부장(사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기존의 정도현 CFO(사장)까지 포함해 총 3인 각자 대표 체제로 변경됐다. 이로써 사업별 책임경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상운 효성 부회장은 이날 주총에서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100년 기업의 대계를 다져나가겠다"면서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 마켓드리븐(시장주도) 기업으로 혁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뜨거운 이슈에도 순조로운 주총=SK㈜와 현대상선·대한항공 등은 주총장에서 주주나 임직원 간 갈등이 예상됐지만 우려와 달리 순조롭게 진행됐다. 국민연금과 일부 외국계 주주가 최태원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를 반대하며 주총장에서 표 대결도 예상됐지만 실제 주총장에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현대상선의 경우 주주의 희생이 수반되는 7대1 감자가 핵심 안건이었다. 그러나 감자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일부 주주들이 경영악화를 성토했지만 대부분 감자에 동의했다. 이백훈 현대상선 대표이사는 거듭 주주들에게 경영악화에 대해 사과했다. 임금을 두고 조종사 노조가 쟁의 중인 대한항공 주총장에서도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이날 이규남 조종사노조위원장이 "직원들이 힘들게 일해 이익을 창출함에도 정상적인 경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으나 다른 참석자들이 안건 의결을 재촉하면서 발언권이 넘어갔다. 이에 따라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이혜진·임진혁·강도원기자 liberal@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