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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할 것만 같던 해외주재원…
IMF 터지며 상업-한일銀 합병 고난
조직문화 달랐던 구성원간 오해 일쑤
상대방 입장으로… 퍼즐 맞추듯 극복
서민금융 도우미로…
금융인으로서 누리고 배운것 환원 다짐
대부업 아닌 공적 대출중개 회사 통해
절박한 분들과 신뢰 쌓아 진정한 도움
목표는…
중개건수 늘었지만 모르시는 분 많아
SNS 등 홍보 최선, 저변확대에 총력
금융 산업은 물론 한국 경제가 고속 성장하던 1990년대 중반.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 한 번 해외로 나갈 일이 생겼다. 해외 주재원 발령지는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꿈꾸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 하지만 상업은행 뉴욕지점 근무는 당초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지면서 바다 건너 고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할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할 노릇이었다. 그러던 차에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전격 합병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두 은행의 뉴욕 지점도 합쳐졌다. 엊그제까지 경쟁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됐다. 조직 문화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아무 준비도 없이 한데 모였으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구성원 사이에 사소한 일로 오해가 생기기 일쑤였다. 중간 직급으로 간부와 일반 사원의 가교 역할을 하느라 스트레스가 날로 커지던 차, 어느 날 그의 머리에 고사성어가 하나 떠올랐다. 역지사지. 누구나 아는 쉬운 말이었지만 그 순간 너무나 절실했다. 매일 아침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는 다짐을 하며 출근했다. 지점은 퍼즐을 맞추듯 천천히 하나가 돼갔다. 화려할 것 같았던 뉴욕 생활은 그렇게 '고난 극복기'의 추억으로 남았다.
조용흥 한국이지론 대표는 "겉으로는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힘든 시기에 파견돼 정작 웃을 일은 많지 않았다"며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순간들을 극복하면서 오늘날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조 대표는 "모두에게 적응하기 힘든 변화였다"며 "하지만 두 은행이 합병하면서 새로운 환경이 열리고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위기는 곧 기회라고 받아들였던 것. 또한 그 시절 어려움을 극복하는 키워드가 됐던 '역지사지'라는 말은 이후 조 대표의 인생에서 등불과 같은 역할을 했다. 다시 지점장이 돼 뉴욕으로 또 한 번 나가고 이어 우리아메리카은행 은행장을 역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 대표는 "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며 "특히 아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늘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보며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불시에 누가 방문을 하든 간에 조촐하게 라면 한 그릇이라도 정성껏 내놓으며 미소를 잃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언제라도 마다하지 않는 아내는 조 대표에게 인생의 동반자이자 스승이다.
조 대표는 "한국이지론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도 아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환영을 했다"며 "그간 금융인으로서 누리고 배운 것들을 우리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 열렬하게 지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조 대표 역시 공적 대출중개회사인 한국이지론의 대표로서 금융의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돼주겠다는 열의에 사로잡혀 있다. 조 대표는 "그동안 은행에서 일하면서 많은 기회를 누렸고 막연히 언젠가는 제가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사실 처음에는 한국이지론에 대해 잘 몰랐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정말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아직 한국이지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단순히 대출업체 등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며 "그래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이지론의 역할을 열심히 설명한다"고 웃었다. 한국이지론은 은행 등이 공동 출자한 사회적 기업으로 국내 유일의 공적 대출중개 회사다. 75개 금융회사와 신용평가시스템을 전산으로 공유하며 고객에게 가장 유리한 대출 업체를 소개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서도 금융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국이지론을 이용하라고 권유할 정도다.
조 대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일단 이용을 해본 사람들의 반응은 굉장히 좋다"며 "특히 상담원들이 고객들을 돕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성실하게 대하다 보니 이용 후 고마움을 직접 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고객의 경우 2년간 꾸준히 상담원들과 금융 상담을 이어가면서 2년 만에 모든 부채를 정리했고 장문의 후기를 홈페이지에 남기기도 했다.
조 대표는 "미국 생활을 하며 관계의 중요성을 알았다"며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긍정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데 서민금융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이지론을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분들에게 신뢰를 먼저 줘야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이지론 상담원들은 온라인으로 접속했다가 중간에 그만둔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상담을 먼저 권한다. 온라인상에서는 형성되기 어려운 관계를 목소리를 통해 만들어나간다. 그렇게 한 명의 고객에게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 한국이지론이 존재하는 이유라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조 대표의 현재 바람은 더 많은 사람에게 한국이지론을 알리는 것이다. 2012년도 3,000여건에 그쳤던 중개 건수가 올해에는 2만4,000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등 큰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이지론을 아예 모르거나 단순한 대부업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실례로 지방자치단체와 제휴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쪽에서 한국이지론을 대부업체로 여기면서 단칼에 거절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안타까워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표되는 양극화, 장기화된 경기불안과 고령화 사회 속에서 조 대표는 한국이지론의 역할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고 말한다. 조 대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서민금융의 역할이 커질 텐데 최소한 한국이지론을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며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은 물론 버스 광고도 늘리고 상담원도 증원하면서 최대한 많은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e is… △1956년 부산 출생 △1975년 부산 동래고 △1980년 서울대 무역학 학사 △1994년 영국 에식스대 경제학 석사 △2009년 우리은행 경영기획본부 부행장 △2011년 우리아메리카은행 은행장 △2014년 법무법인 에이팩스 상임고문 △2015년 한국이지론 대표이사 |
고객에 더 나은 삶 안내하는 금상첨화의 마음을 조용흥 대표, 경영 철학 조용흥 한국이지론 대표가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실력·인격·관계' 세 가지 요소의 조화다. 이 세 가지가 균형을 맞춰야 인생에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 대표는 "30년 넘게 금융업에 몸담으면서 실력은 있지만 인격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사람도 봤고 실력과 인격은 갖췄지만 관계를 잘 맺지 못해 결국 더 큰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숱하게 봤다"며 "삼발이처럼 실력·인격·관계의 세 개 다리가 균형을 잡도록 제 자신에게는 물론 직원들에게도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 세 가지 중에서도 조 대표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관계다. 단순히 서로 알고 지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서로 간에 더 잘될 수 있도록 시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조 대표가 생각하는 진정한 '관계'다. 그는 "예전부터 좋아하고 자주 썼던 말이 '역지사지'인데 요즘은 '금상첨화'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며 "이왕이면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는 관계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까지 내면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조 대표는 한국이지론에 몸담은 후 직원들에게 고객과의 관계에서 금상첨화를 항상 기억해줄 것을 늘 당부하고 있다. 고객에게 단순히 상품을 안내한다는 생각에 그치지 말고 고객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하다 보면 고객도 그 마음을 알고 진심으로 고마워할 것이라는 뜻에서다. 이와 더불어 조 대표는 실력과 인격 수양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마음으로, 늘 배움의 자세를 잊지 않는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주말마다 남산도서관을 찾는다. 최근에는 고(故)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다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조 대표는 "감옥 안에 갇힌 것도 아니면서 가만히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삶의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문을 박차고 나가 실천의 현장으로 나가야 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두형기자 mcdjrp@sed.co.kr
사진=송은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