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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에서 22일(현지시간) 동시다발로 발생한 폭탄테러로 34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지만 금융시장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북한의 도발에도 우리 경제가 큰 동요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테러가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학습효과'로 경제·금융시장의 테러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출근길 '유럽의 심장'에서 발생한 테러로 22일 유럽 증시는 1%대 중반의 급락세로 출발했다. 하지만 하락폭을 만회해 영국 증시가 0.13%, 독일이 0.42%, 프랑스가 0.09% 상승 마감했다. 미국 뉴욕 증시도 장 초반 0.5% 내외로 하락하더니 다우지수가 0.23%,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 0.09% 하락하고 나스닥은 0.27% 오르는 등 큰 반응 없이 장을 마쳤다.
예전에는 테러 소식에 10원 넘게 급등(원화약세)했던 원·달러 환율도 23일 소폭(2원40전) 오른 채 장을 시작해 결국 전일보다 7원60전 오른 달러당 1,161원20전에 마감했다. 코스피는 1.69포인트(0.08%) 내린 1,195.12, 코스닥은 2.12포인트(0.31%) 하락한 689.39에 장을 마치는 등 아시아 증시 전반이 잠잠했다. 안남기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테러가 반복해서 발생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테러는 일회성 이벤트라는 생각이 커지고 있다"며 "오히려 저가매수 기회라는 인식이 커지며 금융시장 영향이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테러에 의한 금융시장 영향은 테러가 발생한 지역과 방식, 피해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01년 미국 9·11테러의 파장은 막대했다. 뉴욕 증시가 4일간 폐장했으며 세계주가지수는 8영업일 연속 하락해 총 12.2%나 내렸다. '세계 경제 심장'이 공격당했다는 공포감과 여객기를 건물에 충돌시키는 전무후무한 방식 탓에 투자자들의 공포심리가 극에 달했다. 세계 주가가 테러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30일이나 걸렸다. 당시 파장은 시장을 넘어 실물경제에도 미쳤다. 개인의 소비심리가 찬물을 맞아 9월 미국 소매판매 증감률은 전월 대비 -2.4%를 기록해 9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닷컴 버블 붕괴도 겹쳐 미 경제성장률은 2000년 4%에서 2001년 0.9%로 추락했다.
2004년 3월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열차테러의 여파도 컸다. 9·11의 악몽이 되살아나며 세계 주가가 이틀간 2.3% 하락했고 회복하는 데 16거래일이나 걸렸다. 이듬해 터진 2005년 7월7일 영국 런던 지하철테러에서는 세계주가지수가 0.4% 하락했고 하루 만에 반등에 성공하는 등 큰 영향은 없었다.
2013년 4·12 보스턴 마라톤 테러 때는 비교적 영향이 컸다. 8년간 잠잠했던 테러의 공포가 확산하며 세계주가지수는 3일간 2.7% 하락했고 주가회복까지 8거래일이 걸렸다. 하지만 지난해 11월13일 파리테러 때는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장이 열린 16일 아시아 증시만 1%대 하락했을 뿐 유럽과 미국 증시는 모두 상승 마감했다. 아시아는 하루 만인 17일 하락폭을 모두 만회했다.
다만 추가 테러가 발생할시 금융시장의 내성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 연구원은 "최근 서방의 이슬람국가(IS) 공격이 이라크·시리아에서 예멘·리비아까지 확대되고 유럽에서도 급진 이슬람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어 추가 테러 가능성이 있다"며 "돌발 테러가 연이어 발생하면 시장 및 소비, 투자심리를 통해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