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기댄 반짝특수론 한계...'亞 쇼핑천국 육성' 면세대책 내놔야

[불붙은 동북아 면세전쟁...새판짜라]
<하>면세산업, 관광대국 밑거름
즉시환급 금액제한으로 일부 무용지물...규제완화 필요
K세일은 참여·할인율 확대해 홍콩처럼 인지도 높여야
'쇼핑+관광+레저+호텔' 통합형 콘텐츠 활성화도 절실



지난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1층 부가세 즉시 환급 창구에 유커들이 북적였지만 실제로 환급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외국인 고객이 매장에서 물건을 살 때 부가세를 즉시 깎아주는 ‘외국인 부가세 즉시 환급’ 제도를 도입했지만 백화점 특성상 대부분 결제 금액이 건당 한도인 20만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여성복 층에서는 오후3시 반 무렵까지 즉시 환급을 받은 외국인이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같은 시각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는 외국인 고객과 직원 간 실랑이가 빚어졌다. 결제금액이 20만원을 넘자 여러 번 나눠 결제해 달라는 읍소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제도 시행 3개월을 맞았지만 시스템 미비로 즉시 환급을 받을 수 없는 매장도 수두룩했다. 한 드럭스토어 실무진은 “일부 단말기는 교체가 필요한데다 아직 환급 시스템도 불안정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 관광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유통·관광업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정책과 방안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높다. 특히 실질적인 규제 완화나 유관 업계를 총망라하는 종합 대책이 미진하다고 업계는 아우성친다.


전문가들은 서울이 다국간 경쟁 시대에 아시아의 쇼핑 도시로서 명성을 유지하려면 정부 차원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노력과 유통·관광·레저·호텔 등 유관 업계의 전폭적인 협력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지난 몇 년간 구축된 ‘쇼핑 서울’의 입지는 해외여행에 눈뜬 유커들이 ‘한류’ 이미지에 빠져 만들어낸 반짝 특수일 뿐 장기간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태국 등 대체 관광지가 빠르게 부상하는 등 유커 선호도가 급변하자 전문가들이 호언장담했던 ‘유커 1,000만 시대’의 구호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홍콩의 경우 수입 제품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면세 도시이면서 여름과 겨울 두 차례 도시 전체가 참여하는 파격적인 정기 세일을 실시하며 ‘세일 천국’ 이미지를 쌓았다. 하지만 우리 정부 주도의 내·외국인 할인행사인 ‘K세일데이’ ‘코리아 그랜드세일’은 도시 전체가 참여하는 쇼핑축제의 이미지를 구현하기에는 참여율이나 인지도·할인율 모두 부족하다. 올 초 K세일데이는 유통가 신년세일 직후 실시돼 세일 기간 사이에 간격을 요구하는 규정에 따라 백화점 등은 참여하지 못했다. 세일 시기와 할인율 등에 대한 중장기적인 논의도 필요하지만 일부 소매업계에서는 “(협조 여부를) 듣지조차 못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시작된 외국인 즉시 환급제는 건당 20만원 이하의 결제에만 해당돼 면세점에 이어 쇼핑 기지로 부상 중인 백화점에서는 활용이 어렵다. 면세점의 1인당 쇼핑 금액은 50달러 수준으로 일반 관광객이 주로 찾는 반면 유커 큰손들은 신상품이 많고 쾌적한 백화점을 선호한다. 반면 즉시 환급제가 발달한 일본은 이용 금액에 제한이 없다. 이와 관련, 정부는 외국인 결제 건수의 70%가 건당 20만원 이하로, 제도 시행 여파를 지켜봐야 하는 현재로서는 적정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명품 브랜드에 목매는 면세 업체들의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시내 면세점 중 루이비통·에르메스·샤넬 등 3대 명품이 모두 입점한 매장은 롯데소공, 신라장충, 롯데 월드타워, 동화 등 4곳으로 세계 최대다. 괌과 하와이의 시내면세점은 각각 1곳이고 일본·중국 등 기타 아시아 국가의 시내면세점 중 이들 3대 브랜드가 모두 입점한 매장은 없다. 국내 면세점에 이들 매장이 추가로 입점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쇼핑과 레저·관광산업의 융합은 관광 대국을 꿈꾸는 우리에게 더욱 절박한 문제다. 쇼핑 관광차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한 번 더 찾는 국가가 되려면 다양한 관광 콘텐츠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유커들은 2박 3일 혹은 3박 4일 동안 한국을 찾아 서울이나 제주도 등에서 1~2박씩 지낸 뒤 귀국한다. 경주나 제2의 도시인 부산·강원도 등 국내 주요 관광특구는 빠져 있다. 쇼핑과 숙박·레저·관광 등을 아우르는 연결고리가 부족한 탓이다. 롯데가 ‘서울에 어울리는 관광 랜드마크’를 목표로 조성 중인 123층 높이의 롯데월드타워와 같은 콘텐츠 개발을 단순히 기업 차원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용산 신라아이파크면세점도 충북과 전남·북, 강원도와 손잡고 지방 관광지를 여행하고 면세 쇼핑도 할 수 있는 관광 패키지 개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면세점과 숙박시설, 쇼핑몰 등과 함께 유적지나 최첨단 관광 콘텐츠 등이 인접 지역에 함께 들어서야 관광을 활성화할 수 있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와 관광 활성화에 나선다면 외국인 투자를 활용한 개발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박윤선기자 heew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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