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수도 부산은 갑작스러운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수많은 사람이 처절하게 삶을 살아낸 곳이다. 전쟁이 끝난 뒤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에서 ‘잘 가세요 잘 있어요’ 하며 고향에 돌아갔지만 그 삶의 흔적은 아직도 부산 곳곳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중앙동역에서 내리면 계단 개수가 40개라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 ‘40계단’이 보인다. 피난민들은 이곳 주변에 모여 미군의 구호물자는 물론 일자리까지 얻어 생계를 꾸렸다. 그들은 이곳에서 낮에는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나누고 밤에는 부산항에 정박해있는 배들이 밝히는 불빛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다.
감천마을과 비석마을도 피난민들이 판잣집을 지어 정착한 이른바 달동네다. 산 중턱에 집들이 계단식으로 뿌리내린 감천마을은 오늘날 한국의 마추픽추라고 불리는 부산의 관광명소가 됐다. 일본인 공동묘지 자리에 조성돼 그렇게 명명된 비석마을은 비석이나 상석이 옹벽 또는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집의 주춧돌로 사용돼 치열했던 피난생활을 엿보게 한다.
그 어렵던 시기에 피난민들은 어묵으로 배를 채웠다. 어묵은 전쟁 통에 피난민들에게 값싸고 배부른 최고의 영양식으로 인기를 끌었고 이후 부산어묵은 국가대표 어묵으로 자리 잡았다.
부산시가 국비·시비 등 모두 8억원을 들여 ‘피난수도 부산 야행(夜行)’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부산시는 임시수도 청사(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임시수도 대통령관저(임시수도기념관) 등 피난수도 관련 문화재 33건을 포함한 문화 콘텐츠를 하나로 묶어 그 시절을 재현한다고 한다. 66년 전 피난수도 부산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벌써 마음이 설렌다.
/한기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