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위기가 한창이었던 1997~1998년 많은 우리 기업이 외국에 팔려 나갔지만 종자·종묘 업계만큼 무더기로 매각된 사례도 드물다. 당시 업계 1위와 3위이던 홍능종묘와 중앙중묘가 멕시코계 세미나스(현 몬산토)에 매각됐고 2위인 서울종묘는 스위스의 노바티스로 넘어갔다. 4위인 청원종묘마저 일본 업체에 넘어가면서 “종자 주권(主權)을 잃어버렸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하긴 자본력 있는 외국 기업들이 돈줄이 마른 국내 기업을 사들이는 것은 충분히 남는 장사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종자와 농약 등 농업 관련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세계적 붐이었다. 이 분야 메이저 업체들 대부분이 M&A의 주체가 되면서 몸집을 키워 현재의 위치에까지 섰다. 그중 서울종묘를 인수한 스위스 노바티스가 2000년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농화학 부문과 합병해 설립한 회사가 신젠타다.
신젠타는 매출액 151억달러(2014년)에 세계 농약 1위(20%), 종자 3위(8%)를 차지할 뿐 아니라 세계 3대 유전자변형작물(GMO) 종자 기업이기도 하다. 중국 국영기업 켐차이나가 얼마 전 M&A시장에 매물로 나온 신젠타를 인수했다. 몬산토 등도 인수에 나섰으나 중국 M&A 사상 최대규모라는 430억달러(52조원)의 막대한 현금 동원과 현 경영진을 승계하기로 한 조건 등이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연방상원 의원들이 이 계약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신젠타가 미국 등 북아메리카에서 매출의 4분의1을 거두고 있어 미국 식량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몬산토·듀폰 등 미국 종자 산업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이유다. 식량 안보 차원에서 이번 인수에 치밀할 정도로 공을 들인 중국도 그대로 있을 것 같지 않다. 일찌감치 종자 주권을 잃어버린 우리 입장에서 주요2개국(G2)의 ‘신젠타 전쟁’을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야 하는 처지가 서글프다. /온종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