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생활임금제




2007년 정부가 아파트 경비원과 같은 감시·단속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제를 적용하기로 하자 전국에서 아파트 경비원이 잇달아 해고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경비원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지금도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이런 해고가 반복되면서 경비원들이 나서서 “임금인상을 하지 말라”고 호소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정부가 ‘착한 의도’를 가지고 법을 시행했지만 비용증가를 우려하는 아파트 주민의 마음까지 읽지 못했다는 비난이 나왔다.

이런 딜레마는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월마트의 경우 지난해 4월 최저임금을 시간당 9달러로 올렸다가 약 10억달러(약 1조1,700억원) 추가비용이 발생하자 이 비용을 흡수하기 위해 일부 매장 직원의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조기 퇴근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어느 나라나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노사 간 격론이 여전하지만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의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크지 않다. 생활임금이라는 용어가 확산되는 것도 그래서다. 생활임금은 주거비·교육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소한도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수준을 보장하자는 것으로 문제는 이를 충당할 재원이다.

영국이 다음달 1일부터 주요 선진국 가운데 처음으로 생활임금제를 전격 도입하기로 하면서 이 급진적인 임금 실험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첫 생활임금으로는 시간당 7.2파운드가 적용되고 4년 뒤에는 9파운드까지 오른다. 연평균 6.25%씩 인상한다는 것이 목표로 기존 최저임금 인상속도(2.1%)의 세 배에 달한다. 집권당인 보수당은 야당 시절인 1998년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생활임금 도입을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관건은 얼마나 꾸준히 높일 수 있느냐다. 자칫 선심성 복지정책으로 전락하면서 어느 순간 고용과 실업을 가르는 또 다른 기준선이 될 수도 있다. /이용택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