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행정학자 10인이 본 총선공약] '한국판 양적완화'에는 우려 목소리

금리인하 여력 있는데도 돈 푸는건 선거용 불과
확장정책, 성장 효과 없이 양극화 등 역효과 우려
일부 "가계빚·구조조정에 쓰이면 약발" 주장도

20대 총선에서도 화제를 모으는 정책은 있다. 야권 출신으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에 영입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주장한 ‘한국판 양적완화’다.

한국은행이 산업금융채권이나 주택담보증권(MBS)을 사주면 그 돈을 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관리에 활용한다는 게 양적완화론의 뼈대다. 일반적으로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까지 낮춰 더 이상 금리를 떨어뜨릴 여력이 없을 때 동원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금리를 인하해도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만큼 현시점에서 한은이 필요한 곳을 골라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경제신문이 경제학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한국판 양적완화론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결국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는 것과 같다는 비판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적완화를 한다고 기업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고 부동산 거품을 만들어 일단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번 정부야 2년 뒤면 임기가 끝나고 총선·대선에서 당선되면 그만이지만 부동산 거품이 꺼질 때가 걱정”이라고 꼬집었다.

양적완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양적완화 같은 확장정책이 성장 효과 없이 양극화를 확대시킨다는 주장이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확장경로가 왜곡돼 있어 (돈이 가계부채와 기업 구조조정에 쓰이지 못하고)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을 무릅쓰고 양적완화를 한다고 해도 지금이 적기인지, 또 효과가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많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우리 경제가 양적완화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며 오히려 가계와 기업·국가재정에 부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는커녕 물가가 오르지 않아 소비가 침체된 디플레이션 상황이라는 강봉균 선대위원장의 진단을 반박하는 학자도 있었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디플레이션 상황이 아니다”라며 “양적완화로 돈을 잘 돌게끔 한다는데 돈이 도는 것은 금융기관이 어떤 행태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정치적으로 강제하는 방법도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대상을 좁혀서 지원하는 방식 때문에 특혜시비와 통상마찰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001년 초반 산은이 하이닉스 채권을 사주자 미국 무역대표부가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면서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채권을 사도 실질적으로 그 돈이 특정 기업에 지원됐다면 세계무역기구 분쟁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소수의 찬성파는 무조건 돈을 푸는 게 아니라 가계부채 축소와 기업 구조조정 지원으로 길을 좁혀 유동성을 공급하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미국은 주택담보대출과 학자금대출 등 취약대출에 집중해 돈을 풀었기 때문에 성공했다”면서 “산은을 통해 가계부채와 부실기업 구조조정이라는 특정한 용도로 돈이 들어가게 한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세원·박홍용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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