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통해 세상읽기] 불해하쇠엽갱사(不解花衰葉更奢)

사람들은 꽃이 시든 뒤 잎이 무성해짐을 모른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교수


남도에서 시작된 꽃소식이 서서히 북상하고 있다. 중부 지역에도 주위를 둘러보면 산수유와 목련, 그리고 개나리 등 봄꽃이 곳곳에서 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자연이 해마다 잊지 않고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아무리 무덤덤한 사람도 꽃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주말이면 봄을 즐기려는 상춘객의 차량 행렬로 인해 모든 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조선 후기의 정약용은 사람들이 나무의 꽃에만 과도한 관심을 준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우선 그의 시부터 살펴보자. “사람들은 꽃 심고 꽃구경할 줄은 알지(종화인지해간화·種花人只解看花), 꽃이 시든 뒤 잎이 무성해지는 것을 모른다네(불해화쇠엽갱사·不解花衰葉更奢).” “한바탕 장마 쏟아지고 난 다음(파애일번림우후·頗愛一番霖雨後), 여린 가지마다 어여쁜 노랑 새싹 일제히 돋아나네(약지제토눈황아·弱枝齊吐嫩黃芽).”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고 해도 십일 이상 가기가 어렵다. 나무의 성장 과정에서 꽃과 잎은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꽃은 화려한 맵시를 뽐내며 벌과 곤충을 유혹해 종의 번식을 가능하게 한다. 한 종의 나무 씨가 여러 곳에 퍼지지 않으면 그 나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취약해진다. 잎이 광합성 작용을 통해 양분을 흡수해야 나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여린 잎사귀가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 결과로 나무는 잎이 무성해지는 만큼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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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바로 여기서 의문을 품은 것이다. 꽃과 잎은 나무가 자라고 번식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짧은 기간 동안만 피는 화려한 꽃에만 온통 마음을 빼앗기지만 긴 시간 동안 영양분을 만드는 잎에는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거리를 거닐면 자연스레 그늘을 찾게 된다. 그 그늘도 봄부터 꾸준히 자라나 무성해진 나뭇잎 덕분에 생겨난 휴식의 공간이다. 또한 여름날 우산을 준비하지 않고 길을 나섰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면 길가에 떨어진 커다란 나뭇잎 한 장이면 우산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다. 늦가을과 겨울에 교외에 나갔다가 몸이 차가운 기운을 느끼면 길에 떨어진 나뭇잎으로 불을 피워 몸을 녹일 수가 있다.

이렇게 나뭇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은혜를 베풀고 있다. 정작 사람들은 그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꽃구경을 간다는 상춘(賞春)의 낱말만이 아니라 싱싱한 나뭇잎을 즐긴다는 상하(賞夏)의 말을 만들어 그 공로를 치하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정약용은 30대 중반 황해도 곡산 부사를 맡으며 중앙의 정치 무대를 떠나게 된다. 영조와 정조가 탕평책을 펼치며 인재를 고루 등용한다고 하더라도 중앙 정계는 분파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중앙 정치는 자파의 번식에 힘쓰는 무대라고 한다면 지역의 목민관은 백성의 생존을 지키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정약용은 종의 번식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중앙 정치의 무대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나무의 꽃보다 잎에 관심을 두게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관청의 뜰을 거닐다가 연못에 발걸음을 멈추고 착상을 했을 것이다. 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이제 2주가량 남았다. 정약용의 통찰을 빌린다면 선거는 나무의 꽃이라면 의정활동은 나무의 잎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온통 누구를 뽑느냐 어느 당이 당선자를 많이 내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다. 뽑는 것보다 뽑은 사람이 제대로 의정 활동을 하는지 감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선거는 짧은 기간에 끝나지만 의정활동은 4년간 쭉 지속되기 때문이다. 화려한 꽃보다 의정활동을 잘할 잎과 같은 사람을 뽑아야 대한민국의 나무가 거목으로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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