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로 은퇴월급 만들기] <4회> 첫 발 잘못 디딘 한국 리츠..“상장의무 배제해 리츠 도입 취지 변질…자산규모만 큰 속빈 강정”

절차 까다로운 일반공모보다
기관투자자 자금 모집선호
국내 상장된 리츠 단 3곳뿐
CR리츠 중에는 한 곳도 없어
부투법 29번이나 개정했지만
뚜렷한 방향성 없어 무용지물
유관부서들간 정책협력해야





#올해 초 국토교통부는 리츠가 성장세를 지속해 지난해 한 해 동안 40개의 리츠가 인가돼 총 자산 규모가 18조 3,000억원에 이른다고 자평했다. 실제 지난해 리츠 신규 인가가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자산 규모도 5년 전인 2010년과 비교해 10조원 이상 늘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국 리츠 시장이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리츠의 본래 도입 취지인 ‘공모 상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한 리츠 자산 규모의 증가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리츠가 부동산펀드(REF)와 사실상 경쟁 관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양적으로도 성장이 빠르다고 보기는 힘들다. 리츠에 비해 REF의 자산 규모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리츠 보다 뒤늦게 도입된 REF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36조원으로 리츠에 비해 두 배 가까이 크다. 200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리츠를 도입한 싱가포르나 일본 등과 비교해도 한국 시장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30개가 넘는 리츠가 모두 상장되어 있는 싱가포르나 상장 리츠 비중이 높은 일본에 비해 한국은 현재 상장 리츠가 단 3개에 불과하다. 개별 리츠의 규모도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상장 의무 배제, 첫 단추 잘못 끼운 ‘케이 리츠(K-REITs)’=한국 리츠 시장이 이처럼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초라해진 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애초 도입 목적은 개인투자자들에게 소액으로 대형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 하지만 첫 출발부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제도가 만들어졌다.

리츠 도입의 근거가 된 ‘부동산투자회사법’이 제정된 것은 2001년 4월이다. 하지만 이 법은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됐다. 7월 1일 시행에 앞서 기업의 구조조정 자산을 소화하기 위해 ‘기업구조조정부동산투자회사(CR리츠)’가 5월에 도입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CR리츠의 경우 ‘공모 상장’은 물론 리츠의 가장 큰 특징인 개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책인 ‘이익 배당 의무’가 없다는 점. 실제 한국리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운용 중인 32개의 CR리츠 중 상장 리츠는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 상장됐던 8개의 CR리츠도 평균 상장 기간 5년을 채 못 넘기고 모두 상장폐지 됐다.


한마디로 지금까지는 리츠가 개인투자자들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배당 상품’ 역할을 전혀 못 해왔다. 특히 리츠 정착에 중요한 초창기에 일반 리츠에 비해 각종 세제혜택이 많은 비상장 CR리츠가 시장을 주도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또 위탁리츠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나 국민연금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24개의 주요 연기금이나 공제회들이 전체 리츠 지분의 30% 이상을 보유할 경우 공모 의무가 배제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규정 때문에 리츠 자산운용사(AMC)들이 절차가 까다롭고 번거로운 일반 공모를 통해 개인투자자를 끌어 모으는 대신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하는 방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 리츠 AMC 대표는 “애초 취지는 REF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리츠 업계를 돕기 위해 도입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리츠 공모 상장을 피하는 수단으로 변질 됐다”고 지적했다.

◇부투법 29번이나 개정 했으나 무용지물= 현재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리츠는 단 3개다. 2월 말 기준 전체 리츠 126개 중 3%가 채 되지 않는다. 이처럼 상장 리츠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리츠의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국토부의 자평은 오히려 그 동안 국토부가 리츠 시장의 방향성에 대해 명확한 비전 없이 정책을 펼쳐왔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뚜렷한 방향성이 없다 보니 정책도 수시로 바뀌었다. 실제 부동산투자회사법이 제정된 2001년 이후 지금까지 29차례나 법이 개정됐다. 1년에 두 번 꼴이다.

조만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리츠가 100% 상장된 싱가포르는 시작부터 정책적으로 조율을 잘한 반면 한국의 경우 리츠가 중요하다고는 하는데 국토부와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등 유관 부서들 간의 정책 비전에 대한 공유가 잘 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REF와 리츠의 규제 완화를 두고 벌어진 금융위원회와 국토부, 리츠업계의 충돌은 부동산간접투자상품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관련 부처와 업계의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피터 버워 아시아태평양부동산협회(APREA)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성공적인 리츠 시장을 보면 정부와 증권거래소, 그리고 업계가 투자자들을 교육하고 리츠의 이점을 알리기 위해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금융과 산업, 부동산의 복합 상품인 리츠 성장을 위해서는 유관 기관들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지난 2010년 하나자산운용 공모펀드를 통해 ‘하나대투증권 빌딩’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은 5년 간 연 평균 7% 이상의 배당수익을 올렸다. 앞으로 이 같은 오피스 빌딩이 리츠 형태로 상장되면 다수의 투자자들이 이 같은 배당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코람코자산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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