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이었다. 적게는 10페이지, 많게는 50페이지씩 코스모스를 독파하는데 꼬박 한달이 걸렸다. 이른 아침의 사무실에서 코스모스를 읽는 시간은 행복했다. 그렇게 깊지도, 길지도 않았던 나의 과학서적 독서인생은 코스모스를 읽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이 책에서 주목했던 것은 인류와 생명, 지구와 우주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사실이 아니었다. 그런 위대한 과학적 사실들을 밝혀낸 배경이었다.
생각해 보자. 바다 건너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도 모를 때 지구의 모양에 궁금증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우주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학적 도구가 전무하던 시절, 오로지 사유와 상상력의 힘으로 그렇게 했다. 칼 세이건은 그것을 불‘ 순한 사고와 사상’이라 표현했다.
물론 아무 데서나 그런 사유와 상상력의 힘이 발현되지는 않는다. 코스모스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불순한 사고와 사상은 기원전 6세기 에게 해를 중심으로 한 이오니아에서 태동했다.
그곳에선 세상만물이 원자로 이뤄졌고, 인간과 동물이 원래는 아주 단순한 형태에서 발생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질병은 악마나 신의 소행이 아니며,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믿는 사람도 나타났다. 히포크라테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 피타고라스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오니아에서 그런 불순한 사상이 꽃피우 게 된 것은 다양성 때문이라고 칼 세이건은 진단한다. 이오니아는 섬마다 환경과 정치체제가 달랐다. 모든 섬을 하나로 지배할 만한 강력한 중앙권력이 없었다. 그래서 자유로운 탐구가 가능했다. 불순한 사고와 사상이 허용되는 곳. 모든 위대한 인류의 유산은 그런 곳에서 탄생했다. 철학과 예술도 그렇지만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반역이다’의 저자 프리먼 다이슨.
모든 과학자는 반역자다?!과학은 반역이고 과학자는 반역자다. 물리학의 거장이자 ‘과학은 반역이다’의 저자인 92세의 노(老)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이런 말로 책을 시작한다.
“시의 해석이 하나가 아니듯 과학에도 유일한 관점은 없다. 과학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관점들의 모자이크다. 그러나 이런 관점들에도 한 가지 공통 요소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역의 우세한 문화가 가용한 제약들에 맞서는 것, 즉 ‘반역’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20세기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과학자들을 통해 반역의 가치를 찾고 21세기 과학의 길을 모색하는 에세이다.
문예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그가 기고했던 논평과 서평을 모은 것으로 작년 7월 국내에 출간됐다. 코스모스의 여운이 가시는 게 아쉬워 서둘러 주문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읽었다.
멀리 돌아갈 필요도 없다. ‘과학은 반역’이라는 명제는 쉽게 증명 가능하다. 우선 아인슈타인.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렇게 고백했다.
“뮌헨의 루이폴트 김나지움 7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러 학교를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나의 항변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우리 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 대한 학급의 존경심이 더럽혀진다’고.”
그 선생님은 10대 아인슈타인의 어떤 모습을 목격했던 걸까. 프리먼 다이슨의 경우 반항하는 10대를 넘어 반역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례에서 과학이 서양의 철학이나 방법론의 규칙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젊은 영혼들을 구속하는 모든 문화의 압제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동맹, 그것이 과학이다.”
이런 사례는 숱하게 많다. 위대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오마르 하이얌에게 과학은 이슬람의 지적 구속에 저항하는 반역이었다. 그는 이런 시구를 짓기도 했다.
“저 엎어놓은 사발을 하늘이라 부른다. 그아래 갇혀 우리는 일생을 살다 간다. 하늘을 향해 도움을 구하는 손을 내밀지 말지니, 하늘도 그대와 나처럼 무력하게 돌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과학자이기 전에 반역자였다.
뉴턴은 싸움꾼이자 반체제 인사또 한 명의 대표적 반역자는 아이작 뉴턴이다.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지만 늘 승리하는 노련한 싸움꾼이었다. 자신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한 로버트 훅을 상대로도, 미적분의 발견을 둘러싼 라이프니츠와의 표절 시비에서도 이겼다.
뉴턴은 1687년 ‘프린키피아’를 출간한 후 정치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다. 당시 국왕이었던 제임스 2세가 대학의 독립성을 위협하자 국왕에 대해 강경한 노선을 취했다. 대학 비망록에 ‘용기 있는 자만이 법을 지킨다’고 적기도 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반체제 인사였던 셈이다.
반역자로서의 과학자를 말할 때 수학자 챈들러 데이비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미국하원의 반미활동위원회로부터 동료를 공산주의자로 밀고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밀고하지 않으면 유죄 판결을 받아야 했던 야만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권유를 거절하고 유죄판결을 받는다. 재판 중에도 프리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수학연구를 계속했을 만큼 열정으로 가득했다. 프리먼 다이슨은 챈들러 데이비스를 회원으로 임명하던 때를 프리스턴 고등연구소의 역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는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반역은 이러한 반체제의 의미도 포함되지만 더 포괄적이다. 과거의 제약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려는 합리적 이성의 저항이다. 갈릴레오부터 아인슈타인과 리처드 파인만, 그리고 현대의 수많은 아마추어 천문가들까지 과학자들은 독단적 철학이나 방법론의 규칙에 저항하며 반역의 선봉에 서고 있다.
19세기 일본의 1세대 과학자들에게도 과학은 전통 봉건주의 문화에 대한 반역이었다. 인도의 물리학자 라만, 보세, 사하 등에게 과학은 영국 통치에 대한 반역이자 힌두교의 운명론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런 반역자들이 있었기에 19세기 생물학의 자연선택과 물리학의 맥스웰 방정식 같은 중요한 발견이 가능했다.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그 역시 종전의 전형적 과학자의 틀에서 벗어난 인물이었다.
과학은 예술의 한 형식이렇게 합리적 이성의 저항을 자양분 삼아 과학이 발전했다. 한 방향만 강요하는 학문은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부분에서 전체로 지식의 폭이 양방향으로 넓어질 때 발전하는 학문이 바로 과학이다. 지식이 한 방향으로만 성장한다고 독단하는 환원주의 철학은 과학에 어울리지 않는다. 독단적 철학적 신념들은 과학의 테두리 안에 설 곳이 없다.”
그러면서 저자는 과학이 철학보다는 예술과 닮았다고 말한다. 불완전성 정리에 대한 괴델의 증명에서도 철학적 주장은 보이지 않는다. 괴델의 증명은 마치 샤르트르 대성당처럼 아름다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첨탑과 같다. 아인슈타인 방정식 역시 예술작품에 가깝다. 저자는 그것이 독창성과 아름다움, 의외성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짓는다.
“과학은 철학적 방법이 아닌 예술의 한 형식이다. 과학의 위대한 도약은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새로운 도구의 발명에서 시작된다. 과학을 환원주의 같은 하나의 철학적 관점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추면 안 된다. 그것은 나그네의 몸이 침대에 맞지 않는다고 다리를 자른 프로크루스테스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팀
/과학칼럼니스트 김형석 blade3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