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화약고 위에서 낮잠 자는 울산공단

사회부 장지승기자

사회부 장지승기자
도로에서 상수도관이 터져 시내가 물바다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래된 배관이 압력을 받으면 이런 사고가 나는데 피해는 물값에 복구 공사비, 교통 체증, 행인의 젖은 신발 정도로 끝난다. 하지만 도로 밑에 깔린 것이 상수도관이 아니라 질소나 프로판 등 화학 원료를 운반하는 파이프라면 어떨까. 발목을 적시는 수준이 아닌 생명과 직결된 문제가 된다.


석유화학 공장이 밀집한 울산·온산 석유화학공단에서는 매년 이런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일에도 굴착공사 중 파이프를 잘못 건드려 질소 6만㎡가 누출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배관 파손으로 질소를 공급받지 못한 9개 공장이 24시간 공장 가동을 멈춰야만 했고 한 업체는 200억원의 생산 차질을 빚기도 했다. 1960년대 만들어진 울산·온산 석유화학공단은 600㎞에 달하는 화학물질 관이 땅속에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방치돼 있는 것이다.

해결책은 있다. 지하에 묻혀 얼마나 부식됐을지 모를 파이프를 땅 위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여러 개의 파이프를 한곳에 모아 기업체 간 원료와 완제품, 부산물 등의 교환을 쉽게 하면 경제적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2012년 첫 조사를 한 뒤 4년이 지났지만 지하 배관 지상화 사업은 제자리 걸음이다. 울산시는 정부가 좀 더 주도해 주길 바라고 있지만 정부는 기업체들이 모여 법인을 설립한 뒤 기본설계를 포함한 사업계획서를 들고 오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화학업체들은 당장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데다 불경기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14.5㎞에 이르는 시범구간만 해도 1,500억원 가량 들 것으로 예측되는데 정확한 금액은 기본설계가 나와야 알 수 있다. 설계비부터 먼저 내고 사업에 참여했다가 전체 사업비가 높게 나오는 경우를 우려해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나서서 먼저 물꼬를 터야 한다. ‘안전’ 문제를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범죄와 다름없다. /jj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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