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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동물에 관심이 많았다. 동물학, 해양생물학, 해양학, 지질학, 인류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구자였다. 동물학자를 꿈꾸던 그는 21세 때 바다표범잡이 어선에 올랐다. 이 때 그의 꿈은 그린란드를 횡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889년 그린란드 만년설 횡단을 시작으로 1893년 북극을 탐험, 북극 개발과 연구에 관한 보고서를 썼다.
그는 멈추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북극점(북위 90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1890년 자신의 탐험 계획을 노르웨이 학회에 제출했다. 시베리아에서 북극해로 흐르는 해류와 빙하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반대했다. 북극점 근처는 얼음으로 덮여 항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난센은 얼거나 얼음덩어리와 부딪혀도 부서지지 않는 배 ‘프람호’를 직접 설계했다. 프람은 노르웨이어로 ‘전진’이란 뜻이다. 국회 지원을 받아 1893년 6월 프람호는 돛을 올릴 수 있었다. 그는 약 2년 간 항해 끝에 배에서 내렸다. 북위 84도 4분 지점이었다. 얼음에 둘러 싸여 더 이상 항해를 할 수 없게 되자 그와 스키선수 출신 요한센 대원은 썰매로 갈아 탔다. 썰매 여행을 한 달 동안 계속한 1895년 4월 8일, 그 둘은 북위 86도 14분까지 이르렀다. 식량 부족으로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인류 경험으로는 최북단 지점이었다.
그들은 이후 서쪽으로 가려다 표류했고 영국 탐험대의 구조로 3년 3개 월 만에 본국에 돌아온 난센은 국민 영웅이 됐고 정치 영역에도 본격 입문했다. 이후에도 동물학과 해양학, 탐험사에 관해 수많은 논문을 남겼으며 외교가로서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분리되는 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김진희인턴기자 jh694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