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A08글로벌경제를뒤흔든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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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에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면서 시장이 객관적 지표보다 유력 인사들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며 요동치는 이른바 ‘립코노믹스(Lipconomics·lip+economics의 합성어)’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혀가 수조달러를 움직이는 현 상황을 ‘록스타의 쇼’에 비유하며 비판하고 있지만 경제의 기초체력에 대한 시장의 자신감이 회복되지 않는 한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이너스 금리를 이기는 말 한마디=말이 정책과 지표를 이기는 대표적인 곳은 주요국 외환·주식시장이다. 연초 일본은행(BOJ)의 ‘깜짝’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상승세를 타던 일본의 주식시장은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연준의 금리 인상을 늦추게 할 글로벌 위협 요인이 있다”는 말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미일 금리 차 축소로 인한 엔고 압력이 거세지면서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3거래일 연속 하락해 2월12일 1년 4개월 만에 최저치인 1만4,952.61까지 곤두박질쳤다.
지난 7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는 엔화가치가 장중 달러당 107.67엔을 기록해 2014년 10월 이래 가장 높이 뛰어올랐다. “자의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는 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말과 금리인상 속도조절론을 재차 꺼내 든 7일 옐런 의장의 말이 시장을 뒤흔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0일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준금리를 -0.4%로 기존보다 0.1%포인트 추가 인하하고 채권 매입 규모를 600억유로에서 800억유로로 확대하는 화끈한 부양 보따리를 내놨다. 문제는 “추가 금리인하는 없다”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기자회견이었다. 시장은 정작 부양책보다는 드라기 총재의 입에 주목했으며 유로화가치는 전 거래일 대비 1.50% 오른 유로당 1.1194달러에 장을 마쳤다.
◇산유국 장관의 입에 춤추는 국제유가=‘한마디’의 위력은 국제 원유시장에서도 두드러진다. 국제유가를 3월 들어 끌어올린 것은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 장관의 입이었다. 지난달 7일에는 “산유국 회동을 준비 중”이라는 그의 발언이 시장에 전해지며 북해산브렌트유의 가격이 약 2달 만에 배럴당 40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유가를 다시 40달러 아래로 끌어내린 것도 입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위계승 서열 2위이자 원유 생산업체 아람코의 최고위원회 의장인 모하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자는 1일 블룸버그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원유 생산을 늘리기로 한다면 우리는 문을 박차고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이란 등 다른 산유국을 향해 경고를 날렸다.
그러자 시장에서는 17일로 예정된 산유국 회동이 빈손으로 끝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전해지며 브렌트유 가격은 이날 하루 4.12%가 추락했다. 같은 날 미국 민간 부문 신규 고용이 2~3월 2개월 연속 20만명을 넘어서는 등 유가를 떠받치는 재료가 나와도 가격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확실성이 문제… 경제수장에 ‘입조심’ 주문도=시장 참여자들이 정책 결정자들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현상은 도무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경제의 불확실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블룸버그 정보에 따르면 올해 나온 브렌트유의 2016년 평균가격 전망치는 배럴당 29달러(웨스트팩뱅킹)부터 54달러(인크레멘텀AG)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신호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지표를 떠받치고 있다고 믿는 통화완화 정책이 끝나는 데 과민반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브라이언 켈리 BKCM 창업자는 최근 CNBC 기고를 통해 “우리는 중앙은행 총재들이 ‘록스타’인 시대에 살고 있다”며 “중앙은행 총재들이 록스타가 됐을 때의 문제는 쇼(통화완화)를 끝내려 할 때 대중은 필연적으로 더 해달라며 소리를 지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일부 경제학자들은 정책결정자들을 향해 ‘입조심’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미 경제매체인 포천은 최근 ‘이 정상급 경제학자들은 옐런 의장이 말을 그치기를 원한다’는 기사를 통해 모건스탠리의 데이비드 그린로, 도이체방크의 피터 후퍼 등이 최근 보고서를 통해 연준 위원들이 의사소통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연유진·변재현기자 economicu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