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이미지'에 담은 현대사회의 시대상

진 마이어슨 개인전 '노 디렉션 홈'
학고재갤러리서 내달 15일까지

신작 ‘스테이지 다이브’ 앞에 선 작가 진 마이어슨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늘 다니던 길, 익숙한 일터임에도 한순간 막막하게 보일 때가 있다. 굳이 술에 취한 게 아니어도 처한 상황이, 막막한 심리가 눈앞을 흐릿하게 만드는 때가 있다.

화가 진 마이어슨(44)의 4m짜리 거대한 신작 ‘스테이지 다이브’ 앞에서도 그런 기분이 들지 모른다. 거대한 제철공장의 모습을 작가는 특유의 ‘일그러진 이미지’로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 비틀고 찌그려트려 표현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그건 그림뿐 아니라 말과 글도 마찬가지다. 찌그러짐으로 표현된 화면의 일렁임에서 마치 끊어지기 직전까지 늘어뜨린 고무줄이나 최대의 힘으로 눌러둔 스프링이 응축한 탄성의 힘이 느껴진다. 불현듯 저 왜곡된 형태가 트랜스포머처럼 모양을 바꿔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미국과 유럽을 기반으로 명성을 쌓은 작가 진 마이어슨의 개인전 ‘노 디렉션 홈’이 13일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전시 제목은 미국 가수 밥 딜런의 노래 ‘구르는 돌멩이처럼(Like a Rolling Stones)’의 노랫말이다. 1972년 인천에서 태어나 4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마이어슨은 동양인이라고는 마을 전체를 통틀어 자신뿐이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람들이 “너는 어디서 왔니?”라고 물을 때면 쉽게 대답하지 못했던 심정이 우연히 들은 노랫말과 맞아떨어졌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중 2004년 뉴욕 자크 포이어 갤러리와 파리 엠마뉴엘 페로탱 갤러리 등 세계 정상급 화랑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런던 사치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세계적 컬렉터 찰스 사치가 그의 작품을 소장했고 이후 솔로몬구겐하임미술관, 첼시미술관 등 주요 미술기관이 그의 작품을 수집해 갔다.

작가는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뽑힌 것을 계기로 한국에 왔고 이후 홍콩과 문래동 작업실을 오가며 아시아활동을 전개하는 중이다.

편집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정교한 묘사력도 탁월하지만 녹색과 보라색 등 중간색을 절묘하게 섞어 쓴 재주가 대단한 작가다. 해외 미술관들은 실험적 방법으로 자신만의 회화방식을 창조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그린 왜곡된 풍경화는 상상 화가 아니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현대사회의 시대상을 그린 풍경화다. 5월15일까지. (02)720-1524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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