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한국판 양적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이 4·13 총선 국면에서 일곱 차례에 걸쳐 내놓은 공약 가운데 가장 뜨거운 관심을 불러모은 정책은 ‘한국판 양적완화’다.
여당의 총선 전략을 설계한 강봉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제안한 양적완화 방안은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채권을 인수해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주택금융공사의 주택담보증권(MBS)을 매입해 주택담보대출을 장기상환구조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은행을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부담 완화의 선봉으로 내세워 침체된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현행법상 한국은행이 이들 채권을 직접 매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20대 국회의 원 구성이 완료되는 대로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계획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애초 “(강봉균 위원장의) 개인 소신”이라고 발을 뺐으나 총선 막판에는 “일리가 있다. 제한적 실시는 검토해볼 만하다”고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상당한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정부의 재정정책이 양적완화를 통한 확장 기조로 선회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다만 새누리당이 이번 4·13 총선에서 법안 단독처리가 가능한 180석 확보에는 실패한 만큼 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힘겨운 사투가 예상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방침에 대해 “대기업이 양적완화를 통해 얻은 자금을 실물경제에 투자하기보다 증권시장이나 부동산에 투자해 자신들의 자산을 증가시킬 것이다. 양적완화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당 역시 “무제한적인 돈 풀기는 위험한 도박”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찬성론자들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원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기업의 숨통을 틔워주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양적완화에 준하는 팽창적 통화정책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과 처한 상황이 다른 선진국의 정책을 어설프게 모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치권과 행정부가 나서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일종의 ‘극약 처방’을 통해 미국이나 유럽에서와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