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현의 승마속으로] 1시간 내내 "달려"?…안되지 말입니다

< 29 > 기승 프로그램 설계
달리기만 하면 말 지쳐 능률 떨어져
평보부터 시작해 서서히 속도 높여
몸 충분히 풀린 상태서 구보 시도
마무리도 평보까지 점진적 감속
단계별로 10분씩 효율 분배가 '정석'
기승 빈도 따라 프로그램 조정을

기승자가 말과 함께 만들어가는 승마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느리게 걷는 평보로 워밍업과 마무리를 해주는 게 필수다. 운동 끝 무렵에는 고삐를 느슨하게 하고 주변을 보여주는 등 말의 심신을 편하게 해준다.


말을 타는 데는 비용과 시간의 제한이 따릅니다. 이 때문에 효율적인 시간관리와 효과적인 기승술이 실력과 즐거움을 높여줄 것입니다. 이에 관한 팁을 드리려고 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쓰는 방법을 보통 기승 프로그램이라고 말합니다.

일반 승마장에서 1시간 말을 탄다면 비용을 생각해서라도 구보로만 신나게 달리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면 말이 정말 힘들어 합니다. 동기부여 없이 억지로 하라고 하면 반항을 하고 운동의 능률도 떨어집니다. 늘 강조한 대로 승마는 말과 함께 만들어가는 운동이니까 내 마음에만 맞추려고 하면 진정한 승마의 재미를 즐기기 어렵습니다. 1시간 기승을 가정해 승마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프로그램 구성을 소개하려 합니다.

우선 자동차의 엔진처럼 예열이 필요합니다. 승마장에서 배정받는 말은 대부분 처음일 것인 만큼 다양한 운동을 통해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처음 타는 자동차처럼 핸들이 무거운지, 엑셀이나 브레이크가 어느 정도의 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말도 타면 먼저 고삐를 꽉 쥐어보기도 하고 다리로 살짝 자극을 주기도 하면서 녀석의 스타일을 알아갑니다. 처음에는 느린 걸음인 평보로 10분 정도 몸을 풉니다. 말과 기승자가 서로를 파악하는 시간입니다. 평보라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합니다. 말이 활발하게 걸어가도록 종아리로 옆구리를 꾸욱꾸욱 눌러보고 자신의 몸이 말 몸통에 딱 붙을 수 있도록 양다리와 허리·어깨·손·목을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하면서 말을 온몸으로 느껴봅니다. 평보도 제대로 10분 정도 하면 온몸에 땀이 날 겁니다.


다음 10분 동안은 경속보를 합니다. 경속보는 말의 리듬에 맞게 엉덩이를 들어주는 보법으로 말에게 무리가 적습니다. 이미 평보로 서로의 스타일을 알았다면 서서히 시동을 걸 차례입니다. 경속보를 할 때는 좌경속보, 우경속보로 방향을 바꿔가며 원운동을 해서 말의 몸을 좌우로 충분히 풀어줍니다. 예쁜 원을 만들면서 돌아보면 말도 즐겁고 기승자의 기분도 좋아질 겁니다.

이제는 10분 동안 좌속보를 하며 온몸으로 말의 리듬을 느껴봅니다. 자세를 똑바로 하고 자신의 몸이 천 가방이 됐다는 생각으로 말의 움직임에 몸을 맡깁니다. 좌속보는 기승자나 말에 가는 충격이 다소 크므로 몸을 충분히 푼 후에 해야 합니다. 직선보다 원운동이 말의 스트레칭에 좋습니다. 정확한 자세의 좌속보를 10분간 버티기는 꽤 힘들 겁니다. 그러면 잠시 경속보로 몸을 가다듬고 다시 좌속보를 하며 내 자세와 리듬을 살펴봅니다.

모든 과정이 잘 됐다면 이제는 10분 동안 구보를 시도합니다. 평보·경속보·좌속보를 하면서 자신과 말의 몸이 충분히 풀린 상태에서 자세를 정확히 하고 리듬과 밸런스가 맞아 떨어져야 우아한 구보를 할 수 있겠지요. 또 고삐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우아한 ‘따그닥’ 박자에 맞춰 세련된 기승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10분의 구보에도 엄청난 몰입감과 운동량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젠 속도를 서서히 줄여 다시 경속보로 10분을 타며 자신의 몸과 엔진(말)을 식혀줍니다. 다음엔 평보로 속도를 더 줄여 10분간 마무리 운동을 합니다. 이 즈음 녀석을 충분히 믿게 됐다면 고삐를 길게 해줘 말 머리를 편하게 해줘도 좋습니다. 먼 산을 바라보며 말에게 주변의 꽃도 보여줍니다.

이상은 기본 운동 프로그램입니다. 얼마나 자주 타는지, 여러 말을 타는지 등에 따라 프로그램은 달라집니다. 기본은 있되 정석은 기승자가 창의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1000일간의 승마표류기’ 저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