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안녕 테레사’의 저자 존 차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욱기자
1982년 11월. 미국 뉴욕에서 제 2의 백남준이라 불리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테레사 차(한국명 차학경)가 살해됐다. 당시 현지 경찰은 살해 현장과 시체가 옮겨진 곳이 달라 현장 검증에 어려움을 겪으며 갈팡질팡했다. 이를 지켜보던 테라사 차의 친오빠 존 차는 경찰을 대신해 살해 추정 장소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살해된 곳으로 의심되는 건물 지하 2층 주차장에 내려간 존 차는 건물 벽에 적혀 있는 710이란 숫자를 발견한다. 710은 동생의 사고 이후 어머니가 꿈에서 봤던 숫자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동생의 유품들이 놓여 있었다. 동생의 베레모와 부츠 사이로 장갑이 놓여 있었다. 마치 마지막 순간의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설치한 마지막 작품처럼.
동생이 떠난 이후 한순간도 동생을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내지 못했던 오빠는 사건 발생 34년 만에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안녕, 테레사’는 살해당한 세계적인 예술가 테레사 차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법정 장편 실화소설이다.
아픈 기억일 수 있는 동생의 이야기를 뒤늦게 책으로 펴낸 존 차(71)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티스트 차학경을 살리고 싶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현장에서 발견한 동생의 장갑을 본 존 차는 장갑 안에 동생의 손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죽기 전 손에 대한 작품을 구상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는 동생이 자기 장갑으로 마지막 작품을 남겼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찰이 현장에 있던 학경이의 장갑을 발견했다면 예술 작품이 훼손됐을 것”이라며 “학경이의 마지막 작품인데, 예술계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걸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책을 쓰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살해범이 유죄 확정을 받은 87년 이후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분노와 슬픔의 감정으로 펜은 쉽게 들리지 않았다.
감정을 객관화 하고 아티스트 차학경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6번의 교정 작업을 거쳤다.
존 차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면서 “다행히 작품을 탈고하고 나서 안에 있던 분노들이 해소된 것 같다. 작품을 쓰면서 학경이를 계속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생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동생에 관한 이야기 구상에 집중했던 존 차는 어느새 고희(70)를 넘은 노작가가 됐다. 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앞으로 만주에 관한 이야기를 쓸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