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태백산



조선 세조 3년 가을 어느 날 저녁 태백산(太白山)자락인 경북 봉화군 대현리 주민들은 강원도 영월 관아에 일이 있어 가던 길에 백마를 탄 단종을 만났다. 행선지를 묻자 단종은 태백산에 놀러 간다고 했다. 얼마 후 영월에 도착한 주민들은 깜짝 놀랄 소식을 듣게 된다. 그날 낮에 단종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죽은 단종의 영혼이 말을 타고 태백산에 입산한 것으로 믿었다. 봉화군에 내려오는 비운의 왕 단종에 관한 전설이다.


지금도 태백산 근교 지역 주민들은 태백산 정상 부근 등에 단종의 비각이나 화폭을 걸어두고 태백산 신령이 된 단종을 섬긴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태백산은 예로부터 민족의 영산이며 신령한 산으로 여겨져왔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7대 일성왕(逸聖王)이 10월 상달을 맞아 북쪽으로 나가 ‘태백’에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태백산 산기슭 주민들은 봄·가을에 소를 잡아 산꼭대기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런 연유인지 정상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天祭壇)이 남아 있고 지금도 매년 개천절에 태백제가 열린다. 태백산은 신령스러운 산에 걸맞게 산세가 수려하다. 산 정상 부근의 주목나무 군락은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 불릴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고 겨울에는 눈 풍경이 장관인 ‘눈꽃 산’이 된다.

엊그제 환경부가 태백산을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키기로 결정했다. 생태·경관이 우수하고 역사·문화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는 게 선정 배경이다. 약 70㎦ 면적의 22번째 국립공원의 탄생이다. 3수 끝에 이룬 성과여서 산자락의 태백시·영월군·정선군·봉화군 주민들은 흐뭇하고 뿌듯할 듯하다. 하지만 국립공원 지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지 싶다. 생태 환경을 어떻게 보존하고 가꿔나가느냐에 따라 태백산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장마철이 오기 전에 새 옷 갈아입은 ‘국립공원 태백산’을 둘러봤으면 좋겠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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