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모세혈관, 소공인 살리자] "오차 없는 주조기술로 대기업 협력사 됐죠"

2부. 희망을 만드는 동네공장
<2> 태화목형
주조 직종 최초 숙련기술전수자
견본 분해않고 컴프레서 틀 제작
기술 인정받아 대기업 직접납품
차근차근 준비해온 수출도 눈앞
주문제작 넘어 자체 브랜드 승부

심순식 태화목형 대표가 인천시 동구에 있는 본사에서 각종 상장과 인증서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천=백주연 기자


지난 15일 인천광역시 동구 산업단지 옆 소공인 집적지에 있는 태화목형 사무실로 들어서자 각종 상장과 인증서가 벽면에 가득했다. 심순식(54·사진) 태화목형 대표는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제조업 부문 주조 직종 최초 숙련기술전수자다. 기술을 이어갈 숙련기술대상자로는 4년 동안 심 대표 밑에서 일을 배운 직원을 등록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만큼 심 대표는 숙련기술을 잘 보존해 후대까지 전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 올 1월 1일부터 적어온 숙련기술전수 교육일지에는 기술의 자세한 내용까지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다. 주조 틀 제조에서 조금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심 대표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는 “주조 틀은 한 부분만 오차가 생겨도 전체를 다 바꿔야 하기 때문에 불량률에 예민하다”며 “납품 전 본인이 만든 제품을 다른 사람이 살펴보도록 하는 것이 불량률을 줄이는 검사의 방침이자 노하우”라고 말했다.

엄격한 품질관리를 고집하는 태화목형은 소공인 가운데서는 드물게 대기업 1차 협력업체로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동네공장에서 대기업에 직접 납품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회가 찾아왔다. 생산원가를 줄이기 위해 태화목형에 컴프레서(공기 압축기) 주조 틀 제작 의뢰가 들어온 것. 컴프레서는 재고품의 먼지를 털어내거나 저장소 공기를 압축할 때 자주 쓰이는 필수품이지만 하나당 수입가격이 2억원으로 비싼 편이다. 심 대표는 “도면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며 “견본 컴프레서 제품만 보고 주조 틀을 만들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고 말했다. 견본 제품을 절단하거나 분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원리를 하나하나 생각하며 도면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컴프레서의 특성 상 내부 구멍으로 공기가 빠져나와야 하는데 투시경으로 볼 수도 없으니 직접 연기를 한 쪽으로 투입해 어느 쪽으로 나오는 지 모두 파악했다”며 “도면을 완성해 주조 틀을 만들어 컴프레서를 제작했는데 견본 제품과 똑같이 작동돼 기술을 인정받아 1차 협력사가 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 후 각종 설비 제조 의뢰가 추가로 들어오면서 태화목형은 한 단계 도약했다. 틀 뿐만 아니라 공해 방지 필터인 루트 캡(LUTE CAP), 에이알엠(ARM) 등의 완제품도 자체적으로 생산해 납품하고 있다.


태화목형 직원들이 15일 인천시 동구에 있는 작업장에서 주조 틀 제조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인천=백주연 기자


기술자로 인정받기까지 심 대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소 장사를 하며 일꾼을 둘 정도로 부유했던 집은 아버지의 잦은 음주와 낭비로 주저앉았다. 그가 지금도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소리가 듣기 싫었다. 성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열 일곱 살이던 1979년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당시 문래동에서 주조 틀 공장을 하던 매형으로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술 습득은 쉽지 않았다. 매일 혼나 화장실에 가서 숨죽여 우는 날이 많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그만둘 수 없었다. 낮엔 일을 배우고 저녁엔 학원에 가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며 고등학교 졸업장도 땄다. 그는 “다른 사람이 10시간 잘 때 똑같이 자면 환경을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잠을 줄여가며 같은 기술을 수 십 번 반복하자 조금씩 손에 익었다”고 말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한 그는 1985년 마침내 금상을 수상하며 기술자의 반열에 들어섰다.

심 대표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은 ‘생각하고 살자’다. 그는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지 말고 일을 하더라도 몇 수 앞을 생각하며 일하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하곤 한다”며 “산을 오르는 길은 많지만 중간 지점마다 목표를 가진 사람이 즐겁게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신조는 삶에서 드러난다. 숙련기술전수자로 인정받기 전부터 좀 더 앞을 내다보고 준비해 온 수출 사업이 조금씩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중소기업청 공정개선 사업에 지원해 대면평가를 앞둔 상태다. 연구·개발(R&D) 투자를 받아 기술력을 높인 후 자체 브랜드를 통해 제품을 수출할 계획이다. 특허 출원과 디자인 등록, 공학해석까지 마친 상태다. 그는 “해외 무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것이 우리나라 소공인들이 가야 할 길”이라며 “그동안 주문을 받아 제품을 제작해왔지만 이제 더 나아가 태화목형의 브랜드를 알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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