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구(46·사진) 이지스자산운용 해외부문 대표는 한국 기관투자가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중 하나다. 총 500조원이 넘는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부문이 정착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는 이지스자산운용으로 옮겨 해외 부동산 투자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외 부동산 투자의 역사를 써나갈 수 있었을까.
● 선진 연기금 벤치마킹…금융위기 발판삼아 대체 투자 새 역사
강 대표는 만 34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부동산 투자 경력을 시작했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삼성에버랜드가 부동산과 관련된 회사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대학교 전공을 살려 주로 법무를 맡았다. 그가 부동산 투자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지난 2000년대 중반 미국 코넬대 부동산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후다.
당시만 해도 해외 부동산 투자 경험이 전무했던 국민연금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강 대표는 “대체투자라는 개념조차 정착이 안 돼 있던 시기”라며 “국내 기관들이 카자흐스탄이나 베트남과 같은 신흥국 위주로 굉장히 많은 리스크를 떠안으면서 투자를 하다 보니 결과들이 다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처음으로 선진 연기금이 하던 방식대로 투자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를 시작하던 시기”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출발이 늦었던 강 대표에게 이는 좋은 기회였다. 그는 2004년 8월 국민연금에 말단 직원(과장)으로 입사해 2년여 동안 해외시장을 조사하고 선진 연기금을 벤치마킹하면서 차근차근 해외 부동산 투자를 준비했다.
첫 투자는 2006년 1·4분기에 나왔지만 국민연금이 전 세계 부동산 투자 시장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다. 강 대표는 “2004~2007년은 전 세계적으로 자금이 풍부한 황금기였기 때문에 한국까지 기회가 잘 오지 않았다”며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주로 다양한 부동산 펀드에 간접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가운데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민연금이 글로벌 대체투자 시장에서 존재감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자산가격이 많이 하락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의 선진 연기금들은 금융위기 이전에 부동산 투자 비중이 많이 차 있는 상태였는데 주식 가격이 폭락하면서 부동산 비중이 높아졌다”며 “선진 연기금들은 부동산에 신규로 자산을 배분하기가 힘들어진 반면 국민연금은 부동산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운용사들도 기존 고객들인 선진 연기금들이 이미 대체투자를 많이 진행한데다 신규 투자를 자제하면서 성장 잠재력이 높은 아시아 시장에 공을 들이기 시작하는 등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 핵심자산은 장기간 보유…원칙 앞세운 매매로 잇단 고수익 창출
이처럼 강 대표는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부문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는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 국민연금은 그동안 해외 부동산 투자를 꾸준히 준비한 덕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첫 투자처로 선택한 곳은 영국 런던이다. 금융위기 이전부터 유럽 부동산 펀드에 투자하면서 영국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돼 있다고 판단했고 실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부동산 펀드가 아닌 프로젝트 투자로 처음 사들인 해외 부동산이 바로 런던 버킹엄 궁전 바로 옆에 위치한 오피스빌딩 ‘40 그로스브너 플레이스’다. 국민연금은 2009년에 전체 지분의 50%를 매입했고 2013년에 나머지 지분을 인수했다.
그는 “40 그로스브너 플레이스는 공실이 거의 생기지 않는 자산으로 ‘핵심 자산’은 장기간 보유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지금도 국민연금이 소유하고 있다”며 “이 같은 우량 자산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위기 이전에 약 4년여 동안 부동산 펀드에 투자하면서 쌓은 네트워크와 경험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가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비결은 투자 철학과 원칙에 대한 고집이다.
그는 해외 부동산 투자를 ‘철학과 원칙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라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철학은 투자의 방향을 결정해주는 자전거 앞바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원칙은 자전거 뒷바퀴 역할을 한다”며 “해외 부동산 투자는 선택 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에 최우선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 방향을 확실히 세워야 하며 또한 아무리 방향이 좋아도 원칙이 받쳐주지 않으면 쓰러진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남아 있는 영국 런던의 ‘HSBC빌딩’도 국민연금이 투자 철학과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민연금은 2009년 7억8,000만파운드에 HSBC빌딩을 사들여 2014년 11억8,000만파운드에 매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는 2014년 영국 런던 오피스 시장에서 가장 큰 매각 차익을 거둔 거래로 기록됐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런던의 핵심 자산을 너무 빨리 매각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매각 차익과는 별개로 연평균 6%의 배당 수익이 나오고 있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강 대표의 생각은 분명했다.
그는 “처음 살 때부터 5년 뒤에 매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후 상황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예정대로 매각을 진행했다”며 “영국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하면 지금 시장에 내놓을 경우 그때만큼의 가격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투자는 자산보다 매니지먼트가 중요…좋은 관계가 좋은 결과 낳아
강 대표에게 투자를 잘하는 비결을 물으니 ‘좋은 관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투자들은 전부 좋은 관계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부동산 투자에 있어서는 특히 역량 있는 해외 운용사와 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해외 투자를 할 때는 현지 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한국에서는 대체투자를 자꾸 자산 위주로 보는데 주식 투자 시 운용사의 매니지먼트 능력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투자도 자산 자체보다는 운용사의 매니지먼트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무리 좋은 자산이고, 기회가 있는 자산이라고 해도 매니지먼트의 역량이 없고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좋은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해외 운용사와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을까.
강 대표는 “좋은 관계라는 건 제가 필요하다고 해서 상대방을 이용만 해서는 절대 좋은 관계가 될 수 없다”며 “선의를 가지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도와주는 게 좋은 관계를 만드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글로벌 운용사가 제안하는 투자가 이지스와 맞지 않더라도 경쟁사를 소개해서라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며 “그렇게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1년이나 2년에 한 번씩 좋은 투자 기회가 찾아온다”고 말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강 대표의 노력은 그 자신에게도 큰 기회가 돼 찾아왔다. 지난해 4월 강 대표는 국민연금 해외부동산 팀장에서 이지스자산운용 해외부문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10여년간 국민연금에서 쌓은 강 대표의 해외 부동산 투자 경험을 높이 산 김대영 이지스자산운용 경영부문 대표가 2년 전부터 공을 들인 끝에 데려온 것이다./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69년 경기도 평택 △평택고 △한양대 법학과 △미네소타주립대 로스쿨 석사과정 △코넬대 부동산대학원 석사과정 △삼성에버랜드 부동산 관리 및 법무 업무 수행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해외부동산팀장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이지스자산운용 해외부문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