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구조조정 집도의부터 구조조정하라

김영기 산업부장
원칙 없이 칼 휘두르는 정부·여당
실무진에서 사령탑까지 '아마추어'
권한 명확히 하고 협상의 기술 발휘
옥상옥 벗어나야 구조조정 속도

ㄷㅅㅋ
도대체 이런 구조조정은 처음 봤다.

1997년 환란 직전 한보와 기아자동차 등의 줄부도가 터졌을 때도, 1년 후 5대 그룹 빅딜과 120개가 넘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벌일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적어도 당시 집도의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았고 시장을 제압(?)할 줄 알았다. 대기업 총수가 대통령 면담 이후 눈물을 흘리면서 계열사를 송두리째 내놓는 상황에서도 겸손했고 시장의 노이즈는 일어나지 않았다. 중견기업 오너가 작고한 오호근 전 기업구조조정위원장을 향해 ‘겁박’하더라도, 그는 단호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여러 비판을 받지만 구조조정의 칼만큼은 확실하게 쓸 줄 알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구도조정의 속도를 늦추면 모두가 죽는다는 것, 그들은 그것만은 반드시 지켰다.

물론 당시와 지금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환란 직후에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프레임이 작동했지만 지금은 그런 절박함이 덜하다.

이를 인정해도 지금의 구조조정 기술은 너무 투박하다. 소리만 시끄러운 아마추어 칼잡이들뿐이다.

현대그룹을 보자. 구조조정이 시작된 지 벌써 2년 반이다. 그 사이 당국은 뭐했나. 난데없는 합병설이 등장하더니 부처 간 갈등만 난무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기업의 영업만 방해했다.


엊그제는 미국을 방문 중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거들었다. 그는 “자신이 (기업 구조조정을)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제일 걱정되는 회사가 현대상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관건인 용선료 협상에 대해 “잘 될지 자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안되면 액션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자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 사령탑이 특정 기업을 지칭하는 것 자체가 금도에 어긋난다. 더욱이 용선료 협상의 상대방은 외국이다. 벼랑 끝 싸움이 필요하다. 사령탑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이길지 모른다”는 부정적 톤도 모자라 액션을 취하겠다는 말을 꺼낸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안 도와주면 법정관리에 넣겠다”는 ‘엄포용’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현 상황에서 굳이 경제부총리가 나서는 것에 긍정의 뜻을 표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그의 발언에 시장이 출렁거리지 않았는가.

당국자들은 지금이라도 1999년 오 전 위원장이 200여 외국 금융사들을 상대로 벌였던 대우그룹의 해외 부채 협상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불리한 여건에서 연체 이자도 없이 39~40%만 갚도록 하기까지, 어떤 협상술이 동원됐는지 말이다.

현대뿐 아니다. 현 정부 들어 그토록 구조조정을 읊어왔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요란한 빈 수레였다.

구조조정을 망친 일차적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선거 직전 현대중공업을 찾은 여당 전 대표는 “쉬운 해고가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여당 후보는 아예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은 더 이상 없다”고 잘라 말했다. 피눈물 나는 감원의 아픔을 겪으면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기업 현장에서 표를 얻겠다고 입 발림소리만 하면서 무슨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외치는지….

결국 원인은 구조조정을 하는 칼잡이에 있었던 것이다. 부총리가 “내가 직접 챙기겠다”는 말을 꺼낸 순간, 금융당국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의 정책수행에 대한 낙제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에 관여한 채권은행 수장들 역시 문제다. 낙하산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구조조정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결론은 하나다. 구조조정 집도의부터 수술해야 한다. 부총리가 직접 챙기겠다면 누가 실무 책임을 질 것인지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옥상옥만 될 뿐이다. 늘어난 시어머니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기업이다. 구조조정이 정권 말 치적의 홍보물로 이용되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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