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5A02 한진해운
한진해운 채권단이 한진해운의 벌크선 부문부터 우선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벌크선 부문은 컨테이너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출비중이 낮아 충격파가 덜한데다 규모가 적어 비교적 빨리 유동성 확보에 나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벌크선 부문 매각도 현재 시점에서는 녹록지 않은 일이어서 일각에서는 자사주 처분과 조양호 회장 사재 출연 결단도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업계와 정부 등에 따르면 한진해운 채권단은 부동산과 자사주 매각만으로는 유동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 벌크선 부문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채권단은 한진해운이 지난 2014년 6월 벌크선 부문 중 하나인 전용선사업부를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에 매각한 바 있어 남아 있는 벌크선 부문도 다른 자산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처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용선료 부담 등은 비슷하지만 한진해운은 현대상선과 달리 자산이 많지 않다”며 “그나마 유동성 확보에 빨리 도움이 되는 벌크선 부문부터 매각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사업 부문은 벌크선·컨테이너선·터미널영업 등 크게 세 가지다. 벌크선과 컨테이너선의 매출 비중은 현재는 거의 1대9 정도다. 벌크선 중 전용선 부문이 한앤컴퍼니에 넘어가기 전에는 3대7 정도를 유지했으나 매각 이후 크게 축소됐다. 남아 있는 한진해운의 벌크선 부문은 선박 규모에 따라 케이프·파나막스·핸디 등으로 구분되는 데 이 중 어느 부문을 먼저 매각할지 등 우선 순위에 대한 논의는 향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의 벌크선 매각에 무게를 두는 것은 현대상선 역시 유동성 확보를 위해 가장 먼저 벌크선 부문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내에서 매출 비중이 낮고 주력사업인 컨테이너 매각보다는 파급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역시 2014년 벌크선 부문 중 LNG사업부를 매각한 데 이어 벌크전용선사업부를 1,200억원에 에이치라인해운에 매각했다. 한진해운 내에서 벌크선 외에는 적당한 매각용 물건이 없다는 점도 벌크선 우선 매각에 힘을 실어준다. 한진해운의 터미널은 대부분 해외 소재여서 당장 유동성 확보를 위한 매각물건으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시선이다. 터미널 중 국내 알짜 매물인 부산에 있는 한진해운신항만 지분 50%는 이미 지난해 그룹 계열사인 ㈜한진에 넘겼다.
다만 채권단이 벌크선 매각에 나선다 해도 적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선뜻 나서는 매수자가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2014년 에이치라인해운 지분 일부와 벌크 전용선 4척을 매각해 1,600억원을 확보했는데 현재는 그때보다 시황이 많이 나빠졌다”며 “남아 있는 벌크선 부문을 처분해 이전만큼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심지어 남아 있는 벌크선들은 선대(배의 규모)가 전용 벌크선보다 크지 않고 잔여 계약도 짧아 매수자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진해운이 당장 유동성 확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은 자사주에 불과하다고 보기도 한다. 지난해 3·4분기 기준 한진해운은 2,385만3,732주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이 중 1,380만주를 유동성 확보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는 4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시장의 눈은 조 회장에게 쏠릴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이 유동성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산이 많지 않은 상황인 만큼 조 회장의 사재 출연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경영 정상화 논의 과정에서 일시적인 부족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답을 가져와야 한다고 못을 박는 등 이미 사재출연을 우회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달 말 조 회장을 만났을 당시에도 이미 사재출연의 필요성 등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 940만9,517주를 보유하고 있다. 22일 종가기준 1,788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금융당국·채권단, 경영정상화 방안에
사채권 협상·용선료 인하 포함 요구
한편 한진해운은 25일 채권단에 조건부 자율협약 신청과 함께 경영정상화 방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경영정상화 방안에 유동성 확보뿐만 아니라 용선료 인하와 사채권 협상에 대한 계획도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진해운 역시 현대상선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 부채는 모두 6조6,402억원으로 이 중 금융권 부채는 7,464억원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사채 1조4,832억원과 상거래채무 등 기타 부채 4조4,106억원으로 구성돼 있어 현대상선과 마찬가지로 사채권자집회를 통한 채무재조정이 불가피하다. 당장 오는 6월 말 1,9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와 늦어도 다음달 초 전에는 사채권에 대한 실행 방안이 나와야 한다.
다만 채권단 내부에서도 한진해운의 운명을 조건부 자율협약이냐, 법정관리냐로 결정할지를 두고 미묘한 입장 차가 감지되고 있다. 한진해운이 재무상태로만 보면 2014년과 2015년 소폭의 흑자를 내는 등 현대상선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에 조건부 자율협약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현대상선이 조건부 자율협약을 개시한 상황에서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갈 경우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채권단 일각에서는 한진해운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매각할 수 있는 자산이 많지 않은데다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자 협상에 대한 계획이 명확하지 않아 법정관리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보리·조민규 기자 bor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