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사상 최악의 침체에 빠진 해운업과 달리 항만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매년 꾸준한 수익을 내왔다. 지난해 DP월드가 운영하는 부산신항만이 매출액 2,014억원, 영업이익 584억원을 기록했고 한진해운신항만(부산)도 영업이익률이 30% 안팎에 달했다. 선박의 과잉공급과 상관없이 매년 처리하는 컨테이너 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자산 매각에 나설 때 가장 먼저 터미널 지분을 파는 이유도 좋은 상품인 만큼 금방 새 주인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국적선사가 세계 해운동맹(얼라이언스)에서 제외되는 등 국제 위상이 추락하면 부산 등 국내 항만도 동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지금은 동맹 선사의 근거지인 부산항을 거치도록 노선을 짜지만 한국 선사들이 동맹에서 빠지면 굳이 한국을 기항지로 삼을 이유가 사라지게 돼 항만의 대표 수입원인 화물환적(배를 갈아탐) 물량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화물 운반·관리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가 크고 지역 경기와도 밀접하다는 점에서 항만의 위기는 해운업 못지않게 국가 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글로벌 해운동맹 개편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환적은 일반 수출입 화물과 달리 내린 뒤 보관했다 다시 싣는 과정에서 양·하역 비용과 보관료 등이 생겨 알짜배기 수입 창구로 통한다. 부산항만의 경우 전체 물동량(1,943만TEU, TEU는 6m 컨테이너 1개) 가운데 환적 물량(51.87%)만 1,008만TEU에 이른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부산항에 들어올 이유가 사라지면 이런 환적화물들은 싱가포르나 홍콩 등 주변 항구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지역 경제도 치명타가 불가피하다. 해수부는 오는 2020년까지 부산항을 싱가포르에 이은 2대 환적 거점으로 만들어 1조5,000억원의 경제 파급 효과와 1만5,000여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 항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세계 해운동맹 체제 재편과정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운업계의 오랜 불만 중 하나는 고용 파급 효과가 적다는 이유로 조선업계보다 홀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운업과 관계된 항만 등 배후산업을 고려하면 고용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
국적선사가 없더라도 항만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도 있다. 환적화물 인센티브 제도를 개편하거나 육상 운송비를 지원해 신규 환적화물을 유치하고 기존 환적화물의 이탈을 방지하는 식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대책일 뿐 국적선사의 위상을 유지하는 것만큼 좋은 해법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임진혁기자 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