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앤]45년 무한변신 야쿠르트 아줌마 "건강·情 건네는 보람 커졌어요"

1971년 47명으로 시작 현재는 1만3,000명 활동
최대 방문판매 조직으로유통채널 새 이정표 세워
기능성 소재 화사한 유니폼에 3세대전동카트 도입
발효유외 치즈·커피도 배달...근무여건 개선·매출확대

한국야쿠르트 역삼점에 근무하는 박수희 야쿠르트 아줌마가 신형 전동카트를 타고 고객들에게 제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야쿠르트


“오늘따라 넥타이 색깔이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사모님 센스가 보통이 아니신가 봐요. 건강한 발효유로 활기찬 하루 시작하세요.”

지난 15일 서울 논현1동 주택가. 야쿠르트 아줌마 박수희(43)씨가 전동카트를 타고 나타나며 인사를 건네자 골목길에 웃음꽃이 피었다. 미세먼지가 심하니 마스크를 챙기라는 주부에서부터 길 건너에 휴대폰매장이 새로 생겼으니 한번 방문해보라는 식당 사장님까지 대화 내용도 각양각색이었다. 가정마다 발효유를 전달하는 중에도 박씨를 기다렸다가 제품을 구입하는 고객이 제법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전동카트를 자꾸 몰아보려는 아이들에게는 요구르트를 하나씩 쥐어주며 돌려보냈다.

2년째 야쿠르트 아줌마로 일하는 박씨는 요즘 들어 더욱 일하는 재미가 난다. 기존보다 성능이 개선된 전동카트가 보급된 덕에 일이 훨씬 수월해졌고 제품도 발효유에 이어 커피, 치즈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박씨는 “전동카트를 타면 걸어서 30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10분 만에 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하는 일이기에 가끔 힘들게 하는 손님도 있지만 건강을 전달한다는 사명감에 일하는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45년째를 맞이한 한국야쿠르트의 방문판매조직 야쿠르트 아줌마가 무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쿠르트 아줌마지만 이들은 단순한 판매원을 넘어 이웃에게 정감을 주고 건강을 건네는 ‘동네 파수꾼’으로 통한다. 스마트폰으로 쇼핑하는 시대가 왔어도 야쿠르트 아줌마 특유의 경쟁력은 국내 방문판매 마케팅의 역사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에 야쿠르트 아줌마가 처음 등장한 것은 새마을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이듬해인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장고가 귀했던 시절 신선함이 생명인 요구르트를 신속히 배달하기 위해 서울 종로를 중심으로 야쿠르트 아줌마 47명이 채용됐다. 당시만 해도 유교문화가 강해 가정주부가 바깥일을 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지만 가정주부의 유휴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문판매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한 것이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이후 1975년 1,000명을 넘어섰고 1983년 5,000명으로 늘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발효유 시장이 급성장하자 1998년에는 1만명을 돌파했다. 현재는 1만3,000여명의 야쿠르트 아줌마가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내에서는 ‘여사님’으로 불리는 야쿠르트 아줌마는 한국야쿠르트 연매출 1조원 중 97%를 담당하는 영업의 최전선이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유니폼도 세월에 따라 진화해왔다. 노란색 유니폼과 모자가 야쿠르트 아줌마의 마스코트였지만 2014년 설문조사를 통해 분홍색 계열로 변경됐다. 최근에는 외부활동이 대부분인 야쿠르트 아줌마의 업무환경을 고려해 더위와 추위에 강한 기능성 소재를 채택했고 구김 방지 등의 첨단 기능이 추가됐다.

제품을 담는 카트도 변신을 이어가고 있다. 초기에는 사람이 직접 끄는 수레 형태의 카트였지만 이후 전기모터를 활용한 충전식 전동카트가 일선에 보급됐다. 2014년 12월부터 보급된 3세대 전동카트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발판 위에 탑승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220ℓ 용량의 냉장고를 장착한 전동카트는 대표 제품인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1,000여개를 보관할 수 있고 최대 시속 8㎞의 속도를 낸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근무만족도도 다른 직군에 비해 월등하다. 하루 평균 근무시간이 6.8시간으로 지정된 배달업무가 끝나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출퇴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가사와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주부들의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인지점에 근무하는 이윤숙씨는 자투리시간을 활용해 민요를 배운 지 2년 만에 ‘평안도 향두계놀이 예능 전수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부 일자리 창출과 경력단절여성에게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야쿠르트 아줌마의 사회·문화적인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월 평균 170여만원을 보수로 받는다. 통계청이 근로형태별로 집계한 비정규직 평균월급(145만원)보다 25만원 가량 많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상위 5%는 월 평균 300만원을 벌고 상위 10%도 평균 270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 지난해 ‘야쿠르트 아줌마 명예의 전당’을 수상한 김옥주씨는 연평균 2억5,000만원을 매출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야쿠르트가 올초 진행한 야쿠르트 아줌마 채용설명회에는 3,000여명이 참석해 주부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한국야쿠르트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한 것은 지속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1,000억여원의 개발비를 투자해 신형 전동카트를 개발하고 이동식 신용카드 결제기를 도입해 현금이 없어도 편리하게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 전용 앱을 통해 우리 동네에서 일하는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바로 연락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호평받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방문판매 마케팅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라는 유통업계의 고정관념도 뒤바꾸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아모레 카운슬러’, LG생활건강의 ‘뷰티 컨설턴트’, 코웨이의 ‘코디’ 등이 야쿠르트 아줌마의 성공을 바탕으로 탄생했고 최근에는 CJ오쇼핑도 홈쇼핑업계 최초로 화장품 브랜드 ‘르페르’의 방문판매를 시작했다. 수많은 유업체의 공세에도 한국야쿠르트가 1969년 창사 이래 발효유 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야쿠르트 아줌마 특유의 마케팅과 회사 차원의 체계적인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랑받는 이유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정서적인 교감을 통해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최근에는 각 지방자치단체나 사회복지기관 등과 협력해 야쿠르트 아줌마가 자발적으로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사회공헌활동의 새로운 모델로도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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