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2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기업집단지정 제도가 지난 2009년 5조원을 기준으로 도입됐는데 경제여건도 많이 바뀌었고 상하위 기업 집단 간 격차도 엄청나게 커졌다”며 “지정기준을 상향하되 단순히 기준만 올리는 것은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제도 전반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과거 6년간 국내총생산(GDP) 및 지정집단의 자산증가율·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2009년 당시 5조원은 현재 8조6,000억원으로 환산된다”고 설명했다. 이 기준을 단순 적용하면 지정기준은 9조원이나 10조원으로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자산 5조원을 갓 넘겨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카카오나 셀트리온 등은 모두 제외된다.
대기업집단선정 제도 가운데서는 해외계열사 매출, 연결재무제표 채택, 대기업집단 간 규제 차등적용 등에 대한 재검토가 시작됐다. 정 위원장은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는데 현실에 맞게끔 개선하겠다는 방향은 분명하다”면서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은 실무적으로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특히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을 갖다 쓴 타 부처의 대기업 관련 규제도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부처에서 공정거래법을 원용할 때 (기업에)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관계부처 협의 과정에서 얘기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기업집단지정 제도는) 반드시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발언에 정 위원장은 지금까지 속에 담아뒀던 고민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정 위원장은 대기업집단 간 상하위 격차가 커지고 하위 집단에 이제 막 크기 시작한 신산업종이 속한 현실을 고민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집단 중 가장 작은 카카오 등 자산이 5조원인 집단과 가장 큰 집단인 삼성은 자산이 70배나 차이 난다. 분명히 문제이고 바뀌어야 한다”며 “2009년만 해도 1위였던 삼성과 가장 작은 집단인 한국농어촌공사는 자산이 35배 차이가 났다. 7년 만에 격차가 두 배로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정위 내부에서는 카카오·셀트리온 등 신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정책을 고심하고 있다. 공정위는 우선 대기업집단에 새로 지정돼 공정위 규제에 익숙하지 않은 기업에는 매뉴얼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지원할 방침이다.
정 위원장은 공정위 자체의 규제보다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기준을 활용하는 다른 부처의 규제가 해당 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점을 걱정했다. 공정거래법상 규제만으로는 신사업 진출이나 사업영역 확대 등에 제한이 없지만 고용·언론·세제·금융·중소기업 분야 등 약 60여개 법령에서 대기업집단지정 제도를 원용해 각종 규제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카카오·셀트리온 등은 대기업집단 지정에 따라 공정위가 규제하는 순환출자 금지나 채무보증 제한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기업 총수가 소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전통적인 대기업과 지배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중기적합업종지정 제도 등 중소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규제가 발등의 불이다. 카카오 대리운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 위원장은 이와 함께 최근 속도를 내고 있는 구조조정에서 나오는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기업결합 신고 등 관련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수합병은 개별 기업뿐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며 “기업활력제고법의 기업결합신고간주제도와 공정거래법상 임의적 사전심사를 통해 신속한 구조조정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생 불가능한 기업과의 결합 여부도 다양한 요소와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해 심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활력제고법에 따르면 사업재편 신청기업이 주무부처에 사업재편계획을 신고할 때 인수합병으로 인한 기업결합을 신고하면 그날로부터 공정위에 기업결합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간주한다. 아울러 공정거래법은 임의적 사전심사를 통해 경쟁제한성이 없다고 판단된 기업결합은 본 신고 시 심사기간을 15일 단축한다. 기업결합 심사기간이 평균 20일가량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4분의1로 줄이는 셈이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현재 심의 중인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에 대한 경쟁제한성 심사는 신중하게 처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 위원장은 “방송과 통신의 첫 융합 사례이기 때문에 검토할 부분이 많지만 오래지 않아 심사 보고서가 올라오지 않겠나”라며 “기업의 사업 부문을 분할·매각하는 구조적 명령과 가격 인상 금지나 경쟁사에 미치는 행위를 제한하는 행태적 명령 가운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 지금 시중에 나도는 조건은 인수 당사자가 띄우는 애드벌룬”이라고 일축했다. /세종=임세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