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쉽게 무효되지 않는 강한 특허 만들기

최동규 특허청장

최동규 특허청장


치과용 임플란트 관련 특허를 갖고 있던 한 기업이 특허라는 방패를 앞세워 후발 기업의 시장진입을 저지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으로부터 제품에 사용된 특허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결국 등록된 특허를 통해 사업을 진행하던 기업은 막대한 금전적인 손실을 입었고 회사 이미지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이처럼 최근 들어 무효가능성이 높은 특허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피해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222개 기업 가운데 22.1%가 특허 무효로 인해 직간접적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피해 유형은 ‘타인 특허의 무효’로 인한 피해가 57.8%로 가장 많았고 ‘자기 특허의 무효’로 인한 피해(31.1%)가 뒤를 이었다.

이런 특허들은 긴 소송을 통해 무효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허권자 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을 사용하던 기업까지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특히 소송의 장기화는 금전적 손실 이외에도 제품이나 기업의 이미지까지 훼손해 중소기업을 더욱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손실을 줄이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결할 과제는 무엇일까. 필자는 특허의 등록 여부를 판단하는 특허심사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특허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이나 더 나은 기술을 발명한 사람에게 주는 독점적 권리이므로 특허심사 단계에서 특허 신청된 기술과 기존에 공개된 기술을 비교·검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전까지 특허심사는 해당 기술을 전공한 심사관 개인 역량에 크게 의존했었다. 하지만 산업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특허심사에 필요한 지식의 양이 급속도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심사방식도 변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지성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공유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올해부터 특허청은 동료 심사관, 현장 전문가들과 협력해 심사 품질을 높이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산업현장의 기술정보와 외부 전문가의 지식을 특허심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심사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카탈로그나 설계도면과 같은 현장자료를 심사에 활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심사관이 산업현장이나 연구현장을 방문한다면 최신 기술 동향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생생한 현장자료를 특허심사에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특허청의 한 심사관은 심사 중인 기술과 유사한 기술이 룩셈부르크에 있는 한 건설 회사의 카탈로그에 존재한다는 정보를 현장 방문을 통해 알아내 심사에 활용하기도 했다. 사무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현장자료를 통해 무효가 될 수 있는 특허가 등록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사관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하던 기존 심사방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융·복합기술을 중심으로 각 전문분야 심사관이 함께 심사하는 협업심사를 확대하고 심사관과 심사업무를 도와주는 외부 선행기술조사원간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또 심사관이 특허고객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해 적절한 권리범위를 가진 특허가 등록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심사협력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확대하고 있다. 특허는 전 세계에 비슷한 것이 없어야 주어지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동일한 발명이 각 나라에 특허 출원되었을 때 각국 특허청 심사관들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는 심사협력 프로그램(CSP)을 시행하고 있다. 각국 특허청 심사관간 협력과 정보 공유는 특허심사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도와줄 것이다. 현재는 미국 특허청과 심사협력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지만 앞으로는 중국, 일본 등으로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처럼 심사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강화된다면 우리 기업들도 쉽게 무효가 되지 않는 강한 특허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특허들이 많이 나와 우리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