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관 디지털미디어부장
이번 총선에서 북풍은 먹히지 않았다. 한국 정치에서 선거철 득표를 위해 안보 위기와 북한 이슈를 끄집어냈던 수법은 유통기한을 상실했다. 하기는 마구잡이 공천, 옥새 파동 등 시청률 높은 막장 드라마가 펼쳐졌으니 국민들이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힘들었을 법하다.
하지만 작금의 한반도 상황을 보면 이번 총선에서 남북 이슈가 전혀 부상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꺼림칙하다. 북한이 지난 2월 4차 핵실험에 이어 다음달 6일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발사와 함께 5차 핵실험을 진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남한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의 더욱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을 것이라며 강공책을 지속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이런 식이면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며 압박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대책을 묻는 질문에 우방인 한국과 일본의 피해 우려 때문에 참고 있지만 인도적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북한을 침공해 파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반도에 다시 전운이 감돈다. 남북 대결 악순환의 끝은 어디인가. 만약에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화마(火魔)를 불러온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피해는 온전히 남북 국민의 몫이다. 화마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의 급변 사태로 체제가 붕괴한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세계 양 대국, 이른바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은 매년 수차례 고위급·실무급 전략 경제 대화를 통해 세계 경제는 물론 기후변화, 테러, 안보 의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한다. 북한 유사시 양국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청천강 이남과 이북으로 나눠 주둔하는 1안과 중국이 자국 안보 차원에서 중북 국경선에서 50㎞까지 북한 쪽으로 진입하는 것을 양해하는 2안이 거론됐다고 한다.
남북 대결은 남북만의 게임이 아니다. 남북의 냉전은 사실상 국제전이다. 남북이 충돌할수록 외세 개입 여지가 커지며 남한 정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게 돼 있다. 이 국제전은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가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1894년 동학혁명 발발로 한반도는 청일 전쟁터로 변했고 이후 일본 식민지, 외세에 의한 해방, 미·소 신탁 통치, 전쟁, 분단이 지속되며 국제 냉전이 지속되고 있다. 김일성이 남한을 침공하기로 오판한 것도 당시 세계 냉전 구도에서 소련과 중국이 든든한 뒷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북한 핵실험에 강력히 반발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하고 있지만 방점은 한반도 안정과 평화, 협상을 통한 해결에 찍혀 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한다고 해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하는 등의 제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희망 사항이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압박에 따른 북한 체제의 붕괴다. 이 경우 1,700㎞에 이르는 북중 국경 지역이 대혼란에 빠지고 미중의 동북아 지정학 안보 경쟁에서 중국의 위기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미 정부는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에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대화도 타협도 없다는 북한 불개입 정책이다. 북미 대결이라는 현상유지(status quo) 정책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미국의 동북아 안보 전략에 도움이 된다는 게 미국의 판단인 것이다. 북한은 이에 대해 핵 능력 고도화로 맞서며 자국 체제 방어에 나서고 있다.
결국 한반도 위기의 해결책은 단절된 남북 관계의 복원이다. 남북 대화 단절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구심력을 잃어버리면 외세의 원심력에 휘둘리게 된다. 북한의 핵 포기를 남북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거는 ‘핵 입구’ 전략이 아니라 남북 대화를 통해, 더 나아가 미중을 포함하는 동북아 평화 체제의 추동자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는 ‘핵 출구’ 전략을 고려해야 할 때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페리 프로세스’의 주역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한반도 화해를 위해 “이제는 코리아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세에 맡기지 말고 한반도 운명의 당사자인 남한이 현재의 교착과 대결 구도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y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