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가 26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다산타워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판교=송은석기자
남민우(55·사진) 다산네트웍스 회장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존테크놀로지의 짐 노로드 대표가 남 회장과 인수합병(M&A)을 논의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노로드 대표는 한달음에 우리나라를 방문해 남 회장과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 6개월 만에 다산네트웍스는 존테크놀로지를 종속회사로 편입시키면서 우리나라 코스닥 상장사로는 처음으로 나스닥 상장사를 인수하게 됐다. 우리나라 벤처 역사에서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에 남 회장이 다시 한번 큰 발자취를 남기는 순간이었다. 남 회장은 지난 2004년에도 다산네트웍스를 국내 자생기업으로는 최초로 거대 다국적 기업인 지멘스의 계열사로 편입시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남 회장은 2일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다산타워에서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만나 “1991년 창업을 한 뒤 25년째 사업을 하면서 4번의 심각한 위기가 있었지만 그 위기 속에는 항상 교훈이 있었고 성장의 발판이 됐다”면서 “다산네트웍스와 존테크놀로지의 강점과 주력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인수를 계기로 다산네트웍스는 글로벌 통신장비 톱5 업체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M&A 과정에서 남 회장은 특유의 노련함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상대의 요청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협상에서 우위에 있었지만 다산네트웍스가 존테크놀로지의 지분을 60%를 가져갈 것인지 50%를 가져갈 것인지는 쟁점이었다. 남 회장은 초반부터 협상의 이슈를 선점했다. 기업이 가진 현재 자산 가치만을 가지고 지분 산정을 하자는 단순하고 정교한 논리에 존테크놀로지도 남 회장의 의견을 따르게 됐다. 남 회장이 순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지분을 나누자고 과감하게 협상의 이슈를 선점한 덕분에 존테크놀로지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지분 산정에 포함하려 했지만 남 회장이 제시한 범위 내에서 협상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 회장은 “이런저런 가치를 다 산정해서 협상을 하게 되면 협상이 길어지고 논란이 생길 수 있어 처음부터 현재 자산가치로만 지분을 나누자고 밀어붙였던 게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M&A의 방식도 새로웠다. 대규모 현금이 없었던 다산네트웍스는 자회사 간 합병과 주식교환방식이라는 카드를 꺼내 현금 없이 존테크놀로지를 인수하게 된 것. 다산네트웍스는 북미법인인 다산네트웍솔루션즈와 존테크놀로지의 합병목적 자회사인 디에이코퍼레이션을 합병하기로 하고 이 합병된 회사는 존테크놀로지의 종속회사로 편입했다. 그리고 존테크놀로지의 지분 58%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되는 방식으로 존테크놀로지(자회사)와 새로운 합병회사(손자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남 회장은 “나스닥 입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국내 벤처기업 대표들이 이 같은 M&A 방식에 주목하고 연락을 해오고 있다”며 “협상할 때 도움을 줬던 자문사를 소개해주고 협상 과정도 설명해 주면서 다른 기업들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인수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게 된 남 회장은 이제 ‘사업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에게도 사업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1991년 코리아레디시스템이라는 소프트웨어 수입·판매 기업으로 창업해 6년 만에 IMF 위기가 찾아왔다. 실리콘밸리 소재의 기업에 판매대금을 달러로 송금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환율이 폭등하면서 사실상 부도를 생각해야 했다. 남 회장은 회사 엔지니어들과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상환기한을 연장했고 1년 동안 돈 대신 컨설팅과 개발 용역을 하며 대금을 치렀다. 위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도 발견했다. 남 회장은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 붐을 목격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통신장비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급성장했고 2000년 코스닥시장에 상장까지 하게 된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2001년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면서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온다. 동료 벤처 기업인들 대부분이 무너졌다. 남 회장은 “자신의 치부를 인정할 줄 알아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며 “분식회계로 숨기고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만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시 2004년, 이번엔 내부에서 위기가 찾아왔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하고 원청 업체들의 횡포로 매출은 늘었지만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 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개인의 이익을 버리기로 했다. 창업한 회사의 최대주주 자리를 독일 지멘스사에 넘겨주고 2대 주주와 경영자로 활동하면서 믿고 따라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한 것이다. 그때 남 회장은 3년만 경영하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사업에는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사업은 역시 그의 운명이었다. 2007년 지멘스가 노키아지멘스로 통합되면서 경영권을 다시 가져가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나는 놀 운명은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내가 버림받으면 편한데 내가 누굴 버려야 한다는 것에서 스스로 용서가 안 됐고 책임감과 의리 같은 게 생기면서 재인수에 2008년 8월 계약서에 사인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를 엄습해왔다. 이번에는 해외 시장을 직접 공략하며 재기할 수 있었다. 이때 일본 소프트뱅크에 납품을 시작했고 대만과 베트남 등 아시아 대형 통신사들과의 거래를 확대했다. 그리고 올해 나스닥 상장사를 인수해 인터넷의 본고장인 미국을 공략하기 위해 나서게 됐다.
위기로 다져진 남 회장은 통신장비 업체로는 처음으로 대기업 반열에 오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존테크놀로지는 미국·중동·유럽 지역에서, 다산네트웍스는 아시아 지역에서 강점을 갖고 있어 이 둘의 시장을 통합하면 글로벌 점유율을 업계 상위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또 다산네트웍스의 주력 분야였던 캐리어 분야와 존테크놀로지의 강점인 엔터프라이즈 분야의 시너지 확대로 전 세계 800여 고객사에 토털 광통신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초고속인터넷 접속장비와 모바일 데이터를 유선망으로 연결하는 모바일백홀, 이더넷 스위치 등을 포함하는 엔터프라이즈 제품군과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 분야에서의 경쟁력 강화로 글로벌 톱 5 통신장비 기업으로 성장할 채비를 갖췄다. 남 회장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라는 책을 보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땅히 행동해야 하는 게 진(眞)이고 선(善)이고 미(美)라고 한다”며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이뤄가면서 선배 기업가들이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처럼 제2의 삼성, 제2의 현대차가 되는 것이 다산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성남=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