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 "조선.해운 부실대출 빅배스 하겠다"

김용환 회장 기자간담서 밝혀
구조조정으로 수익성 악화 판단
CEO 교체때 쓰는 회계기법 꺼내
충당금 일시적립 3분기 이후에
규모는 최소 2조~3조이상 될듯

0415A10 농협은행수정
대기업 부실 여신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농협금융지주가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며 수조원대의 충당금을 한방에 쌓는 ‘빅배스(Big Bath)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수익성 악화가 장기화될 것으로 판단되자 통상 최고경영자(CEO) 교체시기에 쓰는 회계 기법을 뒤늦게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3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취임 1년 기자간담회에서 “농협금융은 다른 금융지주보다 대기업 여신이 많아 조선·해운·철강 등 5대 취약에 가장 노출돼 있다”면서 “1·4분기 실적이 좋지 않은데 이어 2·4, 3·4분기의 실적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충당금 부담을 빅배스로 정리해야 한다”며 “지금 충당금 규모가 적기 때문에 누군가는 건전성을 위해 아픔을 참으며 빅배스를 감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빅 배스는 경영진 교체 등의 시기에 잠재 부실을 모두 털어내는 회계기법이다. 통상 CEO 교체기에 빅배스를 실시하지만 농협은 이를 제때 하지 못한 탓에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만큼 부실 채권을 대거 정리하겠다는 설명이다.

농협금융은 지난해 4·4분기 STX조선해양 관련 충당금으로 주력계열사인 농협은행이 적자 전환한 데 이어 올 1·4분기에도 창명해운이 법정관리로 들어가면서 순이익이 급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STX조선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여신 규모가 2조원이 넘는데다 3년 여전 자율협약에 들어갔던 STX조선마저 최근 다시 법정관리로 전환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충당금 부담은 더욱 커질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농협금융이 충당금을 일시에 적립할 시점은 이르면 올해 3·4분기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규모도 최소 2조~3조원 이상은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농협은행은 지난해만 1조2,000억원의 충당금을 쌓았음에도 4·4분기 결국 적자 전환했다. 농협금융은 충당금 적립 시기를 농협중앙회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데다 매년 이익의 일정 부분을 중앙회에 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빅배스를 하기 위해서는 농협중앙회 승인이 필요하다.

김 회장은 “농협중앙회 이사회도 이 같은 공감대를 형성했다”면서 “지금은 조선·해운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이 진행 중이어서 시기나 방법 등은 좀 더 토론하고 연구해볼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 대출은 이번 사안이 정리될 때까지 신규 취급은 어려울 것이며 대출을 최대한 감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농협금융은 또 지난 2월 향후 2년 이내 부실가능 여신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는 등 부실여신 관리에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다. 부실 증가 →대손비용 부담 증가 →손익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겠다는 게 농협의 목표다.

부실 대출 재발 방지를 위한 리스크 강화 방안도 마련했다. 김용환 회장이 주관하는 경영간담회를 실시하고 은행 내에서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부실여신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거시적인 산업 분석을 꼼꼼히 하기 위해 지주 내에 산업분석팀을 신설, 143개 업종에 대한 분석도 시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조기경보시스템과 편중여신 한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기업여신평가 시스템을 고도화했다고 설명했다. 농협은행은 신용감리부 인원도 45명에서 52명으로 확대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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