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 저성장 길어지면 자본주의의 모든 것 무너진다"

[밀컨 글로벌 컨퍼런스]
경기둔화 → 사회불만 → 정치불안 → 위기 심화 악순환
경제난에 탄핵 위기 몰린 브라질 호세프정권 처럼
세계 각국 전통적 경제·금융·정치구조 붕괴 경고
팽배하는 반자본주의 정서 해법 놓고 석학간 격돌도

3일(현지시간) 밀컨 글로벌 컨퍼런스 ‘자본주의 구원이 필요한가’ 세션에서 타일러 코웬(왼쪽부터) 조지메이슨대 교수, 다이애나 파렐 JP모건체이스 연구소 최고경영자(CEO), 피터 러셀 밀컨연구소 선임 연구원,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가 토론을 벌이고 있다./최형욱특파원
“만약 자본주의 경제가 더 장기간 저성장을 지속하면 경제적·금융적·정치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올해 밀컨 글로벌 컨퍼런스에 참석한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의 경고다. 그는 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 등에서 극성을 부리는 국수주의 정당에 대해 “그들은 정권을 잡지는 못하더라도 전통적인 정당 구조를 마비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둔화→사회불만 증폭→리더십 위기와 정치불안 심화→경제위기 장기화’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속출했다. 또 경제난과 불평등이 심화할 경우 정치는 물론 자칫 자본주의 자체까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내몰린 것도 부정·부패 문제보다는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경제난이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에 대한 영국의 국민투표도 마찬가지다. 경제회복이 지연되자 반(反)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도 성장률이 겨우 2%에 불과한데다 노동시장 회복에도 비정규·저임금 일자리만 늘고 있어 일반 국민들이 경기회복을 체감하기 힘든 상황이다.

경제난에 좌절한 미국인들은 워싱턴 정치권으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실제 히스패닉·이민자 등에 대해 막말을 일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주요 지지세력은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저소득층 백인 남성, 제조업 근로자 등이다. 금융위기 탈출 과정에서 막대한 돈 풀기로 월가와 부유층의 배만 불렸다는 것이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마크 워너(버지니아) 민주당 상원 의원은 “현대 미국 자본주의는 미국인 대다수를 위해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나아가 미국 자본주의 자체가 공격을 받고 있다는 위기감도 컸다. 다이애나 패럴 JP모건체이스 연구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대다수는 자본주의를 믿지 않는다”며 “이들은 시장이 소득을 창출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모른다”고 우려했다.

특히 월가는 자신들이 주로 지지하는 공화당에서 트럼프가 사실상 대선 주자로 확정되자 혼란에 빠진 모습이 역력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금융시장과 미국 경제에 재앙을 몰고 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트럼프는 “헤지펀드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처벌을 모면한 자들”이라며 원색적으로 공격해왔다. 허친힐캐피털의 닐 크리스 창립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했다”며 “투자가들로부터 누구를 찍을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미국인들의 반자본주의 정서가 커지면서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세계적인 석학들의 해법을 찾는 세션도 열렸다. 밀컨연구소의 피터 러셀 선임연구원은 ‘자본주의 구원이 필요한가’라는 주제의 세션에서 “더 이상 게임의 룰이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라도 전통적인 자본주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10년간 중국, 서부 사하라 등 10억명이 가난에서 벗어났다”며 “경제적 자유, 법적 규율, 정부 역할 제한 등이 바르게 작동하면 더 동등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는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우리가 불평등의 덫(inequality trap)에 빠지면서 하위 70% 가계까지 생활이 나빠지고 있다”며 “특히 재능 있는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 기회가 줄면서 사회적 역동성이 떨어지는 등 경제 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미국인들이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타일러 코언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은 이전보다 사회주의를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도 “미국인들은 5년 전보다 더 자유무역을 지지한다고 응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스앤젤레스=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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