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스크 의장 “‘하나의 유럽국가’ 이상은 환상”
(브뤼셀=연합뉴스) 송병승 특파원 = 최악의 난민 위기로 유럽이 분열 위기에 처한 가운데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로 EU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그리고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 등 EU 핵심 지도자들은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EU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토론을 벌였다.
투스크 의장은 “공통의 이익과 비전을 가진 하나의 유럽국가를 만들겠다는 이상은 환상이 돼버렸다”고 말했다고 AP 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투스크 의장은 “EU는 정말로 위험하고 어려운 순간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EU가 외부 국경을 효과적으로 통제해 EU 시민들에게 안전과 안정의 느낌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전략이 극우 정당의 발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스크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은 유럽 난민 위기로 각국 선거에서 외국인 배척 등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극우 정당들이 득세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융커 위원장은 난민 위기로 모두가 EU의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갑작스럽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융커 위원장은 일부 국가들은 EU의 혜택을 받는 데는 ‘풀 타임’이고 EU 회원국으로서 의무 이행에는 ‘파트 타임’으로 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난민 분산 수용을 거부하는 동유럽 국가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EU 집행위원회는 난민 16만명을 EU 회원국이 골고루 분산 수용하는 방안을 제의하고 이를 거부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그러나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 강제할당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슐츠 의장은 위기에 처한 유럽이 정치적 지도력 부재로 저열한 민족주의 정치로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슐츠 의장은 유럽국가 지도자들 중 세일즈맨은 많지만 진정한 정치인은 드물다고 지적했다.
EU 통합의 토대가 된 유럽경제공동체(EEC) 설립조약(일명 로마조약)이 1957년 체결된 로마에 모인 EU 지도자들은 유럽통합 이념이 후퇴하고 민족주의적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해부터 걷잡을 수 없는 난민 유입 사태에 직면한 유럽 각국은 속속 국경통제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EU 역내 자유통행을 보장하는 솅겐조약 체제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 또한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움직임으로 EU의 구심력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수년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에서 재정, 금융 위기가 계속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북유럽 국가와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EU 통합에 위협이 되고 있다.
EU 지도자들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6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샤를마뉴상 시상식에 참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난민 위기에 처한 유럽의 통합에 기여한 공로로 이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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