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글로벌 과잉공급, 동북아 논의 틀 만들자

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상훈 경제부 차장


요즘 온 나라가 시끄럽다. 산업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재원 마련, 부실기업 처리 방안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인 탓이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기 전인 올 하반기가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라는 분석에는 조바심마저 인다. 그간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한 정부와 채권단에 문득 부아가 치밀다가도 이참에 부실기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쉬 가시지 않는 찝찝함도 있다. 바로 중국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구조조정의 원인인 ‘글로벌 공급 과잉’의 주범으로 꼽힌다. 조선·철강·유화 등의 취약 업종은 우리만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른 나라, 특히 중국이 과잉 설비를 줄여야 한다. 자칫 우리만 다운사이징에 나섰다가 경기 회복 국면의 과실은 온통 중국 차지가 되는 시나리오는 생각하기조차 싫다. 기껏 죽 쒀 중국에 바칠 수는 없다.


사실 중국에 대한 시장 신뢰는 높지 않다. 올 초 시진핑 국가주석이 산업 구조조정을 공언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넓은 땅만큼이나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방침에 얼마나 호응할지 미지수인데다 구조조정 선언 자체도 구속력 있는 조항이나 액션플랜이 없기 때문이다. 걱정대로 최근에는 일부 지방정부가 파산한 철강업체의 재가동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는 외신보도도 나왔다. ‘지역 경제를 이대로 죽게 놓아둘 수 없다’는 지방정부의 절박감이 좀비 기업의 수명 연장으로 이어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셈. 이런 흐름은 우리의 구조조정 효과를 갉아먹고 경기가 살아날 경우 우리가 소외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런 문제를 다룰 동북아 논의 틀이 없는 점은 아쉽다. 유럽만 해도 유럽경제협력기구(OEEC)가 확대 개편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철강·조선 등 개별 업종의 과잉 공급 이슈를 협의하고 있다. 나라별로 해법을 모색해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아예 OECD에 공식 창구를 만든 것이다. 유럽으로서는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도출한 최종 대안으로 볼 수 있다.

동북아도 이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할 시점이 됐다. 중국 경제는 계속 덩치를 키우고 있고 우리와의 기술 격차도 이제는 무의미한 수준까지 왔다. 한중일의 산업 구조가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지금과 같은 과잉 공급이 구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취약 업종뿐 아니라 자동차·반도체·전자 등 다른 업종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세안+3(한중일)’이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논의 창구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일 듯싶다. 담합 등 통상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유럽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다. 운영의 묘를 살리면 더딘 국내 구조조정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할 여지도 있다. 길게 보고 동북아 협의 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 shlee@sedaily.com

이상훈 경제부 차장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