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몇 년 전 세계를 뒤흔든 싸이의 ‘강남 스타일’ 가사의 일부다. 싸이는 이 노래 덕에 월드 스타가 됐지만 여성성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 가사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일을 잘하기만 해서도 놀기만 잘해서도 안되고, 아름다워야 하고 섹시해야 하고, 그러나 또 한편 정숙해야 하는 여자라. 한 가지만 갖추기도 어려운데 저 모든 요소를 갖춘 여자만이 ‘강남 오빠’에게 선택될 수 있다는 것이니 듣는 여자들은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할까 싶다. ‘여풍당당’, ‘여성시대’라고 하지만 남성들은 여전히 본인들이 원하는 여성성을 주입하고 이에 내면화된 여성들은 서로 그럴듯한 명분으로 무늬만 성차별 없는 세상을 공고하게 만들어 간다.
책 ‘배드 걸 굿 걸’은 대중문화 속에 팽배한 여성에 대한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진화된 성차별(Enlightened Sexism)’이라고 명명했다. 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뉴스, 잡지 등 대중매체가 어떻게 교묘하게 왜곡된 ‘여성성’을 다루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를 내면화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분석했다.
대중문화 등을 통해 주입된 진화된 성차별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여성들이 사회적 유리천장 등에 연대해 맞서고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자괴감에 빠져 힘겨운 다이어트를 하고 슈퍼우먼들을 우러러보는 동시에 질시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쉽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희화화의 대상이 된 페미니즘을 부활해야 마땅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귀결된다. 여자들이 아이디어, 사회적 변화, 정치보다는 얼굴이나 몸매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학습하게 하는 대중매체의 이미지들을 역으로 비웃고 조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나. 이미 ‘여자는 죽을 때까지 예뻐야 한다’고 내면화한 여성들의 생각이 쉽게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조적이게도’ 여전히 회의적이니 말이다. 2만3,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