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한국을 승용마 수출기지로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리번 데보스(46·벨기에). 승마 장애물 세계 챔피언을 지냈다. 요즘에는 트레이너이면서 승용마 조련·판매 사업에서도 수완을 보이는데 한국에 관심이 크다. 유럽에 유학 중인 한국 승마선수와 교류하면서 한국을 오갔다. 그러다 승마 불모지 한국에서 그의 표현대로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 전재희(22)였다. 전 선수의 재능과 열정이 세계 강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전 선수는 국내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보였지만 형편상 국제무대 진출은 요원했다. 이에 국내 후원자와 협력해 ‘다이아몬드’를 직접 연마하겠다며 재작년 자신의 벨기에 훈련장으로 데려갔다. ‘다이아몬드’는 유럽 주요 대회 우승으로 실망시키지 않았다.

얼마 전 만났을 때 그는 한국에 대해 새로운 꿈을 얘기했다. “한국에 승용마 수출기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승용마 수출기지 가능성을 본 것이다. 말의 개량·번식 기반인 높은 생명공학 수준과 우수한 양축기술을 들었다. 그리고 승용마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중국과 소득 증가와 더불어 성장할 다른 아시아 시장을 강조했다. 한국의 우수한 기술과 주변 시장여건에 더해 안정적 사업 환경이 중국이나 아시아 국가 직접 진출보다 한국 투자를 유리하게 한다고 했다.


한 외국인의 의견이지만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는 된다. 자유무역협정 확산에 대응, 농업·농촌에 활력을 제공하고 소득 대체 품목을 장려할 취지로 지난 2011년 ‘말산업육성법’을 제정하고 정부는 다양한 사업을 수행한다. 그런데 승용마 수출기지 가능성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다른 축종에 비해 말의 질병 청정성은 승용마가 전략적 수출품목이 될 강점이 된다. 가금류, 돼지고기는 잦은 질병 발생으로 수출 중단 사례가 많아 수출 전략품목으로서 위험이 크다. 이래저래 승용마는 수출 유망품목이고 중국은 기회의 시장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 한국산 승용마를 원해도 수출할 수 없다. 중국 정부가 한국산 말에 대해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고시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다른 나라 선례를 보면 중국 요구가 다소 까다롭지만 한국의 지리적 위치 우위를 속히 누리기 위해서는 일부 수용적 자세도 필요하다. 지난해 한중 정상회담 이후 농축산부문 검역협의가 활발한데 승용마도 기회가 된다.

한편 수출도 중요하지만 튼튼한 승용마 기지는 강한 내수시장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국내 승마 저변확대가 필요하다. 한국은 승마 불모지다. 1인당 소득 3만달러를 바라보는 나라의 인구 1,000만명 수도 서울에 고급 스포츠·레저의 상징이라는 승마장이 전무한 상태다. 건강·재활·치유·여가·오락의 다양한 승마 수요가 증가하지만 대도시일수록 생활권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승마장이 없다. 거기에는 승마장을 생활 혐오시설로 간주하는 주민 인식이 한 몫 차지한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거주지 인근 승마장을 보면 이는 과도한 억측이다. 첨단기술 적용, 옥내시설 활용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급 생활친화 시설이 될 수 있다. 말 산업 당국의 주민 인식전환 노력과 필요한 제도적 조치 마련이 요구된다.

승용마 기지 정책을 잘 고안된 승마활성 대책과 병행하면 농업·농촌 경제 효과를 뛰어넘는 사회적 효과를 볼 수 있다. 각종 중독에 노출된 청소년과 놀이문화 빈곤으로 여가를 즐기기 힘든 장년에게 건전한 여가·오락 기반이 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에 눈을 박고 살아가는 메마른 청소년의 모습보다 맑은 말 눈망울에 눈을 맞추며 감정의 반려동물과 교감하는 정서적 청소년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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