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비조작 연루된 일 자동차
미쓰비시·닛산에 이어 일본 자동차 업계 4위인 스즈키자동차마저 연비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칫 연비조작 파문이 ‘신뢰와 기술’의 상징이었던 일본 자동차 업계를 나락으로 몰고 갈 기세다. 스즈키는 특히 일본 경차 시장 2위 업체로 주력차종이 대거 조작 의혹에 휩싸였다는 점에서 업계에 미치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8일 도쿄 국토교통성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즈키 오사무 스즈키차 회장은 “지난 2010년부터 법으로 규정한 측정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연비를 높이려는 고의적 판단에서 별도의 측정방법을 택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현재 판매 중인 차종 가운데 16개 차종의 연비 데이터가 조작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인기 차종인 ‘알토’와 ‘웨곤R’ 등이 리스트에 포함됐다. 스즈키차 측은 “연비 테스트를 실시하는 시즈오카현의 연구소는 바다 근처라 거센 바람과 날씨 영향을 받기 쉬워 정확한 시험이 어려웠다”면서 규정과 다른 관측법을 도입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소비자용 안내책자에 적은 연비는 측정치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쓰비시차의 선례를 볼 때 스즈키차도 5~10%가량 연비가 상향 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
스즈키마저 연비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지난달 업계 6위인 미쓰비시차의 ‘데이즈’ 등 4개 차종의 연비조작 의혹으로 시작된 연비 스캔들은 일본 자동차 업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미쓰비시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만 해도 2000년대 초반 리콜 은폐 전력이 있는 일부 차종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강했지만 국토교통성의 현장조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면서 11년간 고의적으로 연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행 저항값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정부와 소비자를 속여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일본 자동차 업계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했다. 결국 미쓰비시차는 1980~1990년대 ‘일본 국내 자동차 판매 1위사’의 영광을 뒤로하고 경쟁사인 닛산차에 인수되는 굴욕을 맛봤다. 이날 아이카와 데쓰로 미쓰비시차 사장은 연비조작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미쓰비시를 품은 닛산도 한국발 연비조작 의혹에 좌불안석이다. 환경부는 17일 국내에서 판매된 경유차 20종을 조사한 결과 한국닛산이 판매한 경유차량 ‘캐시카이’의 배출가스양을 불법으로 조작하는 등 임의설정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 리콜 및 판매정지명령을 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닛산은 이에 대해 부인했지만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이처럼 일본 자동차회사가 연비라는 공통된 부분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배경에는 정부 규제에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신차를 출시하는 회사는 연비를 포함한 각종 보안 기준의 적합성 심사에 합격해야 하는데 이때 연비심사는 차체를 고정한 상태에서 실시해 타이어와 공기 저항값은 업체가 보고한 수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부기관이 별도로 추가 확인을 하지 않는 구조가 조작과 은폐가 손쉬운 상황을 조성한 셈이다.
연비 파문에서 한발짝 물러난 1위 업체 도요타도 마음 편한 상황은 아니다. 2010년 북미 지역에서 가속페달 결함을 이유로 230만여대를 리콜한 경험이 있는 이 회사의 경우 최근 중국에서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 결함으로 렉서스 차종 2만여대를 리콜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과도한 폭발압력으로 문제가 된 다카타 에어백을 장착한 ‘코롤라’ ‘비츠’ 등 500만대를 리콜해야 한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