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원로연극제’에서 자신의 대표작을 선보일 ‘그 여자 억척 어멈’의 김정옥(왼쪽부터) 연출, ‘딸들의 연인’의 하유상 작가, ‘태(胎)’의 오태석 연출. /사진제공=PRM
오랜 세월 한국 연극을 이끌어온 산증인들이 자신의 대표작을 회고록처럼 꺼내 들고 관객과 만난다. 평생 ‘한길(One 路)’을 걸어온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뜨거운 애정을 만날 수 있는 ‘원로연극제(6월6~26일 서울 대학로)’를 통해서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나이만 먹었네요(웃음).” 연극 연출가 김정옥(85)·오태석(77), 작가 하유상(89)은 19일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원로연극제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오랜만에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 어떻게 관객과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며 저마다 기대를 내비쳤다. 이번 연극제에 함께 참여하는 천승세 작가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김 연출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모노드라마 ‘그 여자 억척 어멈(6월3~17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을 선보인다. 그에게 55년 연출 인생의 비결을 묻자 “거지와 연극배우는 3일만 하면 관둘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운을 뗐다. “거지는 말하자면 무소유잖아요. 연극도 사실은 거지와 같이 자신을 버리고 무소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재미를 한 번 붙이면 관둘 수 없는 것이죠.” 그는 연극제 작품으로 ‘그 여자 억척 어멈’을 선택한 이유를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억척 어멈이 여전히 존재하는 오늘날, ‘쏘지 말라’는 주인공의 간절한 외침을 한 시대를 증언하는 마음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는 배우 배해선이 출연한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을 그린 ‘태(胎)(6월3~1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공연하는 오 연출은 “나이 먹고 잔소리가 많아진 것 같다”며 씽긋 웃고는 “쉽게 남에게 휩쓸리고 다수에 속해야만 견딜 수 있는 세상에서 ‘나를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주인공 박중림(박팽년의 아버지) 역은 배우 오현경이 맡았고 정진각·손병호·성지루 등이 출연한다.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는 하유상 작, 구태환 연출의 ‘딸들의 연인(6월4~12일)’이 공연된다. 지난 1957년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격동의 1950년대를 자유연애와 결혼에 대한 희극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어촌의 고달픈 삶을 담은 마지막 작품 ‘신궁(6월17~2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1977년 발표된 천승세의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초연작. 천 작가는 영상으로 연극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신인 정신 없이 작업하면 한계가 오기 마련이죠. ‘이제 끝냈다’ ‘이 정도면 됐다’ 그런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예술에서? 없죠.”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