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세기의 이야기꾼 마르케스가 남긴 '말말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민음사 펴냄

“저는 한 줄 한 줄 글을 쓸 때마다 항상, 그 성과가 크든 작든, 시라는 포착하기 힘든 정신을 불러일으키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에 제 애정의 증거를 남기려고 노력합니다. 시가 지닌 예언적인 힘, 그리고 죽음이라는 숨죽인 힘에 맞서 거둔 영원한 승리이기 때문입니다.”(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 중)

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기자 출신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가 청중을 향해 건넨 연설·강연문을 모았다. 세기의 이야기꾼이 남긴 ‘글’이 아닌 ‘말’의 기록은 그의 재치와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진지한 고민을 담백하게 풀어낸다.


마르케스는 생전 많은 연설을 했지만, 늘 그 자리를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꼈다. 오죽하면 “연설은 인류가 처한 곤경 가운데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라고 했을까. 실제로 1970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한 시상식장 연단에 오른 그는 이런 말을 남긴다. “고백하건대 저는 이 수상식장에 참석하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병에 걸리려고도 했고, 폐렴에 걸리는 방법도 찾았으며 이발사가 목을 자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이발소에도 갔고…(후략)”

이 같은 엄살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수사 없이 마르케스가 꺼내놓은 이야기들은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동향인 콜롬비아 출신 시인이자 소설가인 친구 알바로 무티스와의 우정을 익살스러운 묘사한 ‘내 친구 무티스’에서는 소중한 친구에 대한 사랑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언론,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란 제목으로 1996년 미국에서 한 강연 글에선 언론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을 보여준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마르케스. 그가 1996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강연하며 남긴 이 말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몇 십 년이 흐른 후에도 유효한 메시지일 것 같다. “우선 저는 여러분에게 이 한마디를 남기고자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항상 배당에 책 한 권을 들고 다닌다면 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더욱 나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1만 4,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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