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로벨리 저 /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148쪽 / 1만2,000원
존 M. 헨쇼의 저서 ‘세상의 모든 공식’을 설명할 때 언급했던 ‘방정식-책 판매량 반비례 법칙’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책에 방정식이나 복잡한 공식이 하나 추가될 때마다 판매량이 반감한다는 이 법칙을 스티븐 호킹 박사의 ‘시간의 역사’만큼 철저히 따른 과학서적도 없다.
실제로 시간의 역사에는 단 하나의 공식만 언급돼 있다.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아인슈타인의 ‘E=mc²’가 그것이다. 호킹 박사는 이 공식 하나로 질량과 에너지는 물론 시간과 공간의 복잡한 문제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해석하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장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공식의 창안자 아인슈타인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젊은 시절은 별 볼 일 없었다. 이탈리아 파비아대학에 진학해서도 그의 빈둥거림은 계속됐다. 정식으로 강의 등록을 하지도, 시험을 치르지도 않으면서 재미 삼아 학교에 다녔다. 칸트의 책을 읽으며 그저 학교를 오갔을 뿐이다. 그의 천재성이 폭발한 것은 취리히대학에 진학한 뒤였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이다. 1905년 유명 과학지 ‘물리학 연보’에 세 편의 논문을 보낸다. 첫 번째는 원자가 실존함을 증명하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양자역학의 장을 여는 내용이었으며, 세 번째가 상대성 이론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상대성 이론이 뉴턴의 만유인력에서 설명하는 중력과 논리적으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두 이론이 양립할 방안을 찾고자 무려 10년을 매달렸다. 그 결과, 아인슈타인의 최대 업적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과학 이론이라 칭송받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탄생한다.
인류의 모든 지식 가운데 아인슈타인이 창안하고 발전시킨 지식은 단연 특별하다.
가장 아름다운 이론을 마주한 순간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대학 졸업반 시절 따뜻한 햇살 아래 칼라브리아섬 해안에 누운 채 상대성 이론을 접하며 느꼈던 충격과 감동을 잊지 못한다.
“마법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친구가 귀에 대고 아주 특별한 숨겨진 진실을 속삭여주고, 그 진실을 통해 어느 순간 아주 간단하지만 심오한 규칙의 베일이 벗겨지는 듯했어요. 지구가 둥글고 팽이처럼 돌아간다는 것을 배운 후로 세상의 모습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지 않음을 깨달은 것처럼 말이죠.”
당시의 감동을 잊지 못한 저자는 결국 물리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대가가 됐다.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해 ‘루프양자중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했으며, 대중을 위한 물리학 강연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자신이 느꼈던 충격과 감동을 과학과 무관한 사람들도 느껴보길 바래서다. 이 책의 저술 역시 그런 활동의 일환이었다.
책이 나온 배경도 흥미롭다. 베스트셀러의 상당수가 그렇듯 이 책도 우연히 출간됐다. 이탈리아의 한 신문에 글을 연재하던 그에게 여자 친구가 양자중력을 모두가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책을 써보라고 조언한 것이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양자중력을 하나의 이야기로 압축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할 경우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는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게 진리인 모양이다. 2,000부 정도만 팔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간한 책이 이탈리아에서만 30만부가 판매됐다. 유럽 전체에서는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전 세계 출판계를 휩쓸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도 따돌렸다.
원제 ‘7개의 짧은 물리학 강의(Seven Brief Lesson Physics)’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7개의 강의로 구성돼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일반 상대성 이론이 적용된 우주의 구조, 양자이론에 기반한 물질의 구조, 양자 중력,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블랙홀,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이들을 마주하는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
이탈리아 출신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저자는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해 ‘루프 양자중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 블랙홀의 본질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다.
공간, 시간, 블랙홀, 그리고 빅뱅이처럼 모든 것이 아인슈타인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이 책은 아인슈타인에게 바치는 저자의 찬사로 시작된다.
“인류의 모든 지식 가운데 상대성 이론은 단연 특별합니다. 어떻게 작용하는지 원리만 알게 되면 말도 못하게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상대성 이론의 시작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특별하고 천재적인 발상에서 시작된다. 중력에도 일정한 범위, 즉 장(field)이 존재한다는 발상이 그것이다. 중력장이 공간 속에서 확산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장 자체가 공간이라는 것, 이것이 일반 상대성 이론의 출발점이다.
우선 아인슈타인은 별 주위의 공간이 어떻게 휘는지를 설명했다. 태양이 빛을 굴절시킨다고 예측했고, 그 예측은 1919년 사실로 입증된다. 그는 공간은 물론 시간도 휜다고 내다봤다. 중력이 약한 곳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고,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천천히 흐른다는 것이다. 이 또한 실험으로 입증됐다.
다음은 블랙홀이다. 거대한 별은 수명이 다하면 빛을 잃는다. 자신의 연료를 모두 태우고 열기마저 사라지면 별은 자신의 무게에 짓눌린다. 심지어 공간을 강하게 휘게 만들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구멍이 만들어진다. 이 구멍이 블랙홀이다.
처음에는 이 가설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증거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우주배경복사까지 관찰됐다. 언제나 그랬듯 그가 옳았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그레이스(GRACE)’와 ‘챔프(CHAMP)’ 인공위성을 통해 작성한 지구의 중력장 지도. 적색은 상대적인 중력이 다소 높은 지역, 청색은 다소 낮은 지역을 뜻한다. 울퉁불퉁한 모습은 해당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에 기인한다.
마지막 질문 “인간은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이 책을 이루는 또 하나의 기둥은 양자역학이다. 저자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생각 하나로 만들어진 중력과 공간, 시간에 대한 단순한 시각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단단한 보석과 같다. 반면 양자역학, 혹은 양자이론은 다양한 실험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그것들을 응용함에 따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뜨거운 열상자 속에서 균형 상태에 있는 전기장을 계산했다. 전기장의 에너지가 양자와 같은 덩어리 형태로 분포돼 있다고 상상한 것이다. 그의 예측은 옳았지만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알지 못했다. 이 ‘에너지 덩어리’의 실재를 입증한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이렇듯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으로 시작된 강의는 우주의 구조, 입자, 루프 양자중력, 시간 등을 관통한다. 저자가 이런 심오한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마지막 7번째 강의의 제목을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책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질문만 있을 뿐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시간의 역사’처럼 이 책에도 단 하나의 공식만 등장한다. 아인슈타인의 중력방정식이다. 물론 이 방정식조차 무시해도 좋다. 아니 저자는 무시하라고 말한다.
“베토벤의 사중주에서 흔치 않은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의 전문적인 기교까지는 필요치 않다. 아인슈타인의 예측이든 리만의 이론이든 그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만 인정할 줄 알면 된다.”
책을 덮는 순간,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 진지하게 도전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포기하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쉽고, 아름답고, 명쾌하다’는 책 뒷 표지의 문구가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과학칼럼니스트 김형석 blade3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