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절벽 등으로 경영위기에 처한 국내 조선사들이 올해 해양플랜트 인도에 ‘비상’이 걸렸다. 공기 지연으로 인해 조선사들의 대규모 손실을 안겨줬던 해양플랜트의 인도가 올해부터 몰리면서 추가 지연에 따른 또 다른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다음달 말까지 시추 설비(드릴십) 3기와 원유 생산설비 1기 등 총 4기의 해양플랜트 인도를 앞두고 공정 맞추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계약금액으로만 치면 28억달러 규모에 해당하는 막대한 공사다.
생산 담당 임원들은 거제 옥포조선소 사무실에 아예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공기 진척도를 수시로 체크할 정도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최근 “회사의 성공적인 턴어라운드 여부는 해양 프로젝트의 적기 인도에 달렸다”며 “올 들어 예정대로 인도를 마친 2기를 제외한 나머지 7기의 프로젝트도 적기에 인도하는 것이 올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 들어 세계 최초로 제작한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 설비) 1기와 단일 프로젝트에서 1조원가량 손실을 낸 시추 설비 송가 4호기를 인도했다.
대우조선해양이 해양플랜트 공정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공정 차질로 발주사에 배를 인도하는 시기가 늦어진 것이 대규모 부실의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계약대금의 60~70%를 인도 시기에 받는 헤비테일 방식으로 계약한 시추 설비들은 인도가 늦어지면 그만큼 현금흐름에 이상이 올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다음달 말까지 시추 설비 3기를 인도하면 약 1조원에 달하는 잔금을 받게 돼 유동성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관계자는 “현시점에서 수주보다 중요한 게 인도 기한을 맞추는 일”이라며 “경영진부터 현장까지 전사적으로 공정을 차질없이 진행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8기의 해양플랜트 인도를 앞두고 있다. 금액 기준으로는 50억달러다. 지난달 해상 플랫폼 생산설비(클레어릿지)를 인도하면서 연초 대비 1척이 줄었다. 전체 수주잔량은 17척, 138억달러다. 연초에 그동안 공정 지연의 주범이던 골리앗 FPSO, 고르곤 FPSO 등이 인도되면서 과밀화된 야드가 안정을 찾은 상태지만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총 4기의 해양플랜트 인도가 예정돼 있다. 관건은 지난 2012년 27억달러에 수주한 호주 익시스 해양가스처리설비다. 오는 9월 출항, 연내 인도를 목표로 막바지 공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외에 6억5,000만달러 규모의 시추 설비(잭업리그)도 올해 말 인도가 예정돼 있다. 삼성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이미 설계 및 공정 지연에 따른 손실은 회계상에 다 반영된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조선사들이 해양플랜트 납기 준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우려가 크다. 호주 익시스사는 올 3월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한 원유생산설비(FPSO)의 공정이 늦어지고 있어 우려된다는 내용의 e메일을 대우조선해양 측에 보내기도 했다. 이 시설은 당초 4월 인도 예정이었으나 공정이 늦어지면서 인도 시기가 9월로 연기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러시아 국영선사로부터 수주한 야말 쇄빙 LNG선 1호기의 인도를 7개월 연기하기로 했다. 당초 올해 6월 말 인도할 예정이었으나 테스트 과정에서 불량이 발생하면서 아예 블럭을 다시 만들어 선박전조를 진행 중이다.
같은 회사로부터 삼성중공업이 수주한 해양가스처리설비(CPF) 역시 올해 9월 출항 예정이기는 하지만 업계에서는 납기 준수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인도 예정인 에지나 FPSO 역시 현재 50%의 공정이 진행 중이지만 업계에서는 반신반의의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일정대로 공정이 진행 중”이라며 “에지나 프로젝트의 경우 이미 설계가 95% 이상 이뤄졌기 때문에 추가 손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은 또 올해 초 셸이 발주한 FLNG선의 공정 지연을 진단하기 위해 발주처와 공동 수주사인 테크닙과 함께 맥킨지 등 컨설팅 업체를 고용해 정밀진단에 나서기도 했다.
해양플랜트의 공정이 지연돼왔던 이유는 설계 지연, 설계 변경, 생산현장의 차질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한 결과다. 수주량 확보를 위해 경험이 전혀 없던 각종 해양플랜트를 무리해서 수주한 후 설계 및 생산 과정에서 계획 변경과 업무 지연이 끊이지 않았다. 생산현장에서도 워낙 복잡한 모듈을 만들어 조립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현장 컨트롤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 조선 담당 애널리스트는 “현재 조선 3사가 추진 중인 구조조정은 공정 지연에 따른 추가 손실은 없다는 전제하에 진행 중이기 때문에 추가 지연 상황은 시장의 불신을 불러올 수 있다”며 “비싼 수업료를 내고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지만 상황은 끝까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