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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등과 같이 기업이 대규모 피해를 유발한 사고를 낼 경우 피해자에게 더 많은 위자료를 물게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특히 사건을 은폐할 경우 위자료 인정 액수를 더 올릴 계획이다.
법원은 이와 함께 국회 입법조사처와 손잡고 제조물책임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과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덜어주는 내용의 정책도입 준비에 나선다.
대법원은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경유차 배출가스 조작 사건 등 기업 과실에 따른 국민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다음달부터 국회 입법조사처 공동 심포지엄과 민사법관 포럼을 잇따라 열고 손해배상제도 개선을 추진한다고 23일 밝혔다. 사건 피해자들이 민사재판을 통해 현실에 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입법상·판례상의 조치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우선 오는 7월15일부터 이틀간 2016 전국 민사법관 포럼을 열고 불법행위 유형에 따라 위자료 한도를 차등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인정하는 위자료는 법에서 따로 규정하지 않고 민사재판 과정에서 판례를 통해 기준이 만들어진다. 법원은 이에 따라 사망 사고를 기준으로 지난 1990년 2,000만원부터 지난해 1억원까지 위자료 상한을 올렸다. 다만 현재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사고의 종류나 형태, 가해자의 신분, 재산 등을 고려하지 않고 위자료 상한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현재 위자료를 1억원 이상으로 인정한 경우는 국가기관의 고문에 따른 피해에서 최대 5억 원까지 인정한 판례가 유일하다. 법원은 이런 재판 실무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이번 포럼에서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법원은 국가 외에도 △가해자가 기업일 경우 위자료 상한을 올리는 방안 △가해자의 재산상황에 따라 배상 상한을 높여 적용하는 방안 △고의로 피해를 유발할 경우 더 많이 물리는 방안 등을 합의할 방침이다. 특히 피해 발생 후 가해자가 어떤 대응을 했는지도 위자료 산정기준으로 넣는 방안을 추진한다. 미국의 경우 기업이 사망 사고 등을 낸 후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황이 있을 때 피해자에게 더 많은 위자료를 물리고 있다. 법원이 이러한 조치를 시행할 경우 부도덕한 기업에 간접적인 징벌적 손해배상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한 관계자는 “포럼에서 합의가 나면 3∼6개월 내 실제 재판 실무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민사법관 포럼에 앞서 다음 달 27일 국회입법조사처와 함께 ‘국민의 생명·신체 보호 적정화를 위한 민사적 해결방안의 개선’ 공동 심포지엄을 열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방안 등을 논의한다. △집단소송 요건 완화 및 확대 방안 △입증 책임 완화 △위자료 현실화 방안 △제조물 책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방안 △민사사건 국민참여 방안이 주제다. 법원과 입조처는 실제 제도 마련과 운영에 필요한 세부내용을 논의해 앞으로 각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방침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경우 박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법안의 파급력과 기업 등 관계자들의 이견 등을 이유로 계류돼 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 심포지엄 논의 결과는 앞으로 입법 정책과 사법 정책 수립 및 변화에 중요한 정책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