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수시 청문회 법안을 추진하면서 재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침체에 경제민주화 분위기까지 엮이면서 기업활동이 쉽지 않은데 수시 청문회까지 도입되면 제대로 된 경영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부패를 막는다는 김영란법도 9월 시행을 앞두고 있어 재계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꼴이다.
재계의 고위관계자는 24일 “주요 기업들이 겉으로는 말을 못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수시청문회법에 대한 불만이 많다”며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그룹 총수나 대표이사를 심심하면 불러댈 것인데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논란이 있는 업체의 경우 경영진이 국감도 불려가고, 국정조사나 청문회도 나가고 상시 청문회에까지 출석을 요구받게 되면 결국 경영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국정감사 때만 해도 증인으로 불러 놓고 몇 시간씩 질문도 없이 앉혀두거나 대답은 하지 못하게 한 채 호통만 치는 사례가 많다. 사실상 시간이 돈인 CEO급 인사들로서는 손해가 크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무려 20여명에 달하는 최고경영자(CEO)급 인사가 국회에 불려나왔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과 조대식 SK㈜ 사장, 조현준 효성 사장, 김한조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주인종 전 신한은행 부행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증인으로 채택된 바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정 부분 국회에서 기업 최고책임자에게 의견을 묻거나 확인할 부분이 있겠지만 앞뒤 안 재고 무턱대고 총수부터 부르고 보자는 식이 너무나 많다”며 “국회의 관행이 변하지 않는 한 수시청문회법은 기업에 큰 부담을 주게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재계의 또다른 관계자도 “대기업 오너나 사장을 불러놓고 국회의원들이 3분씩 호통을 치는 식으로 운영되는 건 잘못됐다고 본다”며 “특정사안에 대한 청문회라면 사업을 잘 아는 실무임원이 나가서 청문회가 잘 진행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