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조선업 구조조정, 일자리 대책 병행해야

맹준호 정치부 차장

맹준호 정치부 차장


경남 거제시는 ‘집적 경제 효과’를 얘기할 때 가장 흔히 거론되는 곳이다. 이는 한 지역에 같은 업종의 산업이 집중하면서 발생하는 경제 효과를 말한다. 집적을 통해 인프라 이용, 원료 구입, 구인·구직, 정보 확산, 기술 교환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적 효율이 발생한다.

거제시는 세계 조선업계 톱3에 드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그리고 이들의 협력업체들이 조선해양 분야에서 집적 효과를 창출하며 경제력을 높였다. 울산과 더불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은 지역이 거제시라고들 했다.

산업과 경제가 발전해나가는 데 따라 시 인구 또한 10년 전인 지난 2006년 22만6,000명에서 2015년 30만1,000명까지 늘었다. 2013년 기준으로 시 인구 중 5만명이 양대 조선소에서 일했다. 협력업체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조선산업 인구는 더 많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업 종사 인구까지 감안한다면 거제시는 세계에서 드문 조선 해양 도시로 불릴 만하다.

집적 경제 효과에는 긍정적인 것뿐 아니라 부정적인 것도 있다. 집적이 과도하게 이뤄지면 혼잡, 부동산 가격 상승, 생활물가 상승, 교통 체증 등 사회적 비용이 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 모두 좋을 때 얘기다. 특정 산업에 기댄 도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주력 산업이 위기를 맞을 경우 도시 전체가 휘청거리게 된다는 점이다.


산업이 무너지자 도시까지 폐허가 된 사례는 역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와 인근 도시들이다. 미국 자동차업계 ‘빅3’의 완성차와 부품 공장이 밀집했던 곳이지만 빅3가 미국 남부와 멕시코 등지로 생산시설을 옮기자 사람들은 먹고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도시는 버려졌다. 예전의 화려했던 세계 최대의 자동차 도시, 모터 타운을 줄여 모타운(motown)으로 불리던 디트로이트의 영광은 이제는 전설로만 남아 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인적 구조조정을 언제, 얼마나 하느냐를 떠나 양대 조선소의 수주잔량(일감)이 떨어져가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많은 사람이 조선업을 떠나야 한다.

이들이 대거 일터를 떠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배달·대리운전 등 당장 큰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분야로 실직자들이 몰릴 테지만 그 분야 역시 누군가가 이미 터를 잡아놓았기에 진입과 안착이 어려울 것은 당연하다. 거제시를 떠나지 않고는 먹고살 길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조선해양산업은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지만 거제시는 디트로이트가 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구조조정은 반드시 일자리 대책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 그리고 저유가는 오래가지 않는다. 언젠가는 조선해양산업이 살아날 수 있음을 감안한 구조조정이 돼야 한다.

‘거제(巨濟)’시의 한자는 ‘크게 구한다’는 뜻이다. 옛사람들 대대로 왜 섬 이름이 거제일까를 궁금해했는데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가 생기고 나서야 섬 이름에 어떤 예견이 담겼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과거 거제가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거제를 구해야 할 때다.

/맹준호 정치부 차장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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