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산업기능요원·전문연구요원 같은 대체복무요원뿐 아니라 의무경찰·의무소방원을 포함한 전환복무요원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개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2023년부터는 없애는 방안을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국방부는 논란이 확산되자 확정된 것이 아니라며 일단 진화에 나섰다. 폐지를 반대하는 과학기술계는 현 대체복무제가 인재를 끌어들이는 인센티브이며 중소기업이 우수인력을 활용하는 수단이어서 폐지될 경우 연구개발과 기업경영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반면 폐지 찬성 측은 해마다 2만~3만명 규모의 병력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안이며 시대 변화에 맞게 기존 병역 특례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권혁동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국방부는 매년 2,500명 규모의 이공계 전문연구요원, 6,000명의 산업기능요원을 2020년부터 줄여 2023년 폐지하기로 했다. 출산율 저하로 병력자원이 감소하자 현재 군 규모 유지를 위해 병역혜택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족한 사병 인원을 확보하기 위한 고급 인력 징집방안이 과학기술을 비롯해 방위산업·벤처기업의 후퇴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한다.
대한민국 남자는 병역의무를 진다. 남북 대치상황이며 주위 강대국의 위협에 일그러진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라는 이유만으로 병역을 면제시켜 주면 안 된다. 그렇지만 고급기술자를 각개병사로 쓰기보다는 더 요긴하게 활용해야 한다.
그동안 대체복무제도 덕분에 고급인력이 과학기술 분야 연구기관·산업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외면받던 기초과학·뿌리산업·중소벤처기업·방위산업 분야에서 이들의 연구개발 기여는 아주 컸다.
이 제도는 과학기술·산업 분야의 고급 인재유치에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공계는 학문의 난이도가 높아 공부하기 어렵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대우가 낮기 때문에 선호되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고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인력 유인을 위한 제도로 성공적으로 정착됐다.
징집할 숫자가 모자란다고 이공계 우수인력을 ‘실험실에서 내무반’으로 배치해 2년간 소총수로 근무시키는 것은 매우 어리석다. 6·25때 격전 중에도, 국가가 위태로울 때도 육군사관생도는 전장에 투입되지 않고 정규교육을 시켰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고려였다. 이처럼 우리 군은 전략적이고 국가의 미래를 보는 안목을 가졌다.
앞으로 전쟁의 양상은 로봇·무인기·전략무기 등 첨단기술이 집약된 고도의 과학기반의 싸움이 될 것이다. 최근 벌어진 국제적인 정규·비정규 전투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 군은 지상군·보병중심의 전통적인 체제에 머물러 시급히 전문화된 기술군으로 바꿔야 한다.
다른 분야처럼 대학 재학 중에 2년간 군대를 갔다 와서 연구해도 되지 않는가, 왜 이렇게 이공계인력만 감싸는가 라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의 창의성·응용력이 가장 최대로 성장하는 때가 대학 시기다. 지금은 과학기술 지식이 폭발해 발전속도가 아주 빠르다. 현재 2년은 한 세대 전의 20년과 맞먹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대부분 20대의 연구 성과가 노벨상으로까지 이어진다. 2년의 병사복무기간은 이들에게 전문 분야 성장을 잠재우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다른 나라 20대 과학자는 날고 있는데 우리는 각개병사로 족쇄를 채우면 경쟁력이 급속히 저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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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병역 대신 학문·기술의 능력이 완성돼 고도화된 때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하자. 관련 분야에 대체복무를 시키면 국민개병제의 원칙에도 맞다. 국방기술 분야나 국가 산업기술 정책상 필요한 분야에 복무하도록 하자.
40여년 전부터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이공계 인재들이 대거 투입됐었다. 최신 장비, 최고의 대우를 해줬으며 첨단무기를 개발하는 주역이었다. 자부심도 대단했다. 성과도 많이 나왔다. 그렇지만 지속적인 육성이 이뤄지지 않아 지금은 인기가 별로 없다. 민간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지는 느낌이다. 민간기관에서도 국방 관련 기초·원천연구를 해도 좋겠다. 새로운 군 장비 개발에 국제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만큼 이공계 고급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병력자원이 모자랄 것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예측됐다. 미봉책으로 모자란 병사 수를 채우지 말자. 군 인력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사병병력이 모자라면 화력이나 무기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 전문 하사관 숫자와 기능을 높이는 것도 대안이다. 이들은 사병의 짧은 복무기간으로 인해 첨단무기체계에 요구되는 지식·기능을 확보하지 못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전투병과 이외 군수지원 분야는 적극적으로 민간에 아웃소싱해 사병의 수가 줄더라도 군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개선할 수 있다.
미래의 안보 상황은 지금과는 확 달라진다. 병력자원·첨단무기체계·전쟁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 군이 근본적으로 환골탈태할 시점이다. 우리 과학기술을 지탱해온 인프라 중의 하나인 전문연구원제도를 폐지하면 우수 인재의 유치가 어렵게 된다. 국제적인 경쟁에서 우리는 자꾸 뒤처진다. 지금 우리의 제철·조선·중공업·전자·자동차 등 주력산업은 매우 어렵다. 연구개발투자와 고급인력양성에 힘써야 할 시점이다. 대체복무제 폐지는 이 모든 것에 찬물을 끼얹는 발상이다.